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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Feb 29. 2020

우리가 만드는 낭만에 대하여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음에 감사하는 어느 날의 이야기



생일 축하해요 :)

열흘 내내 비가 오더니 거짓말처럼 먹구름이 걷힌 날. 덕분에 당신의 생일을 잘 보낼 수 있게 됐다. -휴강으로 한가해졌으니까 나들이 갈까?- 그의 문자에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R동 연습실로 향한다. 그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반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축하곡을 연주한 후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 뭐 먹어?”

김밥과 쫄면을 흡입하고 핫도그까지 먹은 후에 115번 버스에 오른다. 한껏 들뜬 표정으로 그의 어깨에 기댄다. 낯선 동네를 지나 구불구불한 산길이 보일 때쯤, 목적지에 가까워졌다는 걸 알아챈다. 물론 대화에 취해 길을 헤매기도 하고 초콜릿 껍질을 찾겠다며 땀을 흘리기도 했지만, 우리는 다시 웃고 만다. 쓰레기를 버렸다고 불같이 화내는 여자와 그런 그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남자. 역시 로맨스보단 코미디인가.


공원 입구, 새끼손가락을 걸고 나란히 걷는다. 더운 날에도 손을 놓지 않는 우리의 스킨십 방법이다. 은하수 꽃터널을 지나 오리배 선착장에 도착한다. 강가 맞은편에 있는 무대도 보인다. 몇 해가 흐르는 동안 공원에 많은 것들이 더해졌다. “여기 많이 변했네. 식물 정원이 생겼고 오리배가 생겼어.” 당신이 말한다. “니 옆엔 내가 있고.” 더위를 달래기 위해 박물관을 둘러보고, 곳곳에 심어진 능소화나무를 보며 감탄을 자아낸다. 그러다 도착한 곳은 무성한 나무와 캠핑장. 낭만의 조각들이 마구 흩어져 마음을 뒤흔든다. 어서 텐트와 캠핑 용품을 장만해야지.


내 오른쪽 팔에 생긴 주근깨를 본 그가 말한다. “꼭 은하수 같아.” 그렇게 우리는 어느 밤의 시가 된다. 별일 아닌 듯 대화를 이어가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도 이별할 수 있는 것. 이 순간은 과거의 간절함이 주는 선물 이리라. 남해로 보냈던 그리움이 한데 모여 오작교가 된 걸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해서 늘 평화롭고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버스 창가로 시선을 돌린 채 숨죽여 울기도 하고 작은 말다툼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전쟁이 두렵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당신이 곁에 있다는 사실.

가뭄과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고요한 소리가 낮게 깔린다. 이제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의연할  있을 테다. 선착장에 배가 없으면 낚시를 하거나 조개를 모으면 된다. 혼자 있을 때는 상상하지 못한 나무집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센 바람에 지붕이 날아갈 위험이 있겠지만. 한가한 시간에는 숲으로 산책을 나설 것이다. 가을바람을 만나면 싱그러운 빛이 반짝이던 복숭아나무와 창밖의 매미소리를 기억해야지. 당신과 나의 모든 순간을 함께 떠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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