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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06. 2020

광안리 바다에 다시 왔어

2년 전, 우리의 애틋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부산행 열차에 오르다

목적지를 정하는 건 저녁 메뉴를 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겨울이 오기 전에 단풍 구경을 하리라고 다짐했지만 머릿속이 온통 파란빛으로 뒤덮인다. 결국 파도 소리를 저버리지 못하고 바다를 향해 눈길을 돌린다. 아마도 마음의 고요를 되찾기 위함이겠지. 당신이 몇 계절을 보냈던 남해, 아름다운 섬이 있는 통영, 내가 사랑하는 강원도, 꽤 자주 갔던 여수,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포항. 여러 도시를 두고 고민하다가 부산으로 마음을 보낸다. 2년 전 우리가 처음 함께 떠난 여행을 떠올리면서. 내 상상 속 바다를 하얀 종이 위에 담는다. 핑크빛 석양과 별들, 여러 빛깔로 부서지는 파도.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던 때, 빈에게 말했다. 기념일이 되면 호박 모자를 쓰고 사탕 바구니를 들자고. 이웃집에 찾아가 사탕을 나눠 주자고 말이다. 하지만 스물네 살의 가을은 동심을 간직할 수 없었다. 악보의 늪에서 헤엄치다 사탕을 전부 잃어버렸기 때문. 해서 시 월의 마지막 날,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기차역으로 달려갈 것이다. 가을 산타를 포기하고 모래사장 위를 거닐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어떤 감정을 오롯이 누려야지.






부산으로 가는 날. 새벽 연습을 마치고 짐을 챙긴다. 배낭이 아닌 캐리어를 선택한 이유는 긴 여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이웃집에서 받은 초콜릿과 커피, 써머스비 한 캔을 쇼핑백에 옮겨 담고 유부초밥을 넣는다. 그는 들뜬 내 표정을 읽고 함께 웃는다. “수영복도 챙길 걸 그랬나?” 패딩을 입고 온 남자가 말한다. 미소를 머금고 기차역으로 향한다.

오후 두 시, 바다에 가까워지는 순간을 기대하며 플랫폼을 찾는다. 다음날 아침 동백섬을 갈지, 떡볶이는 언제 먹을지 고민하면서. 하지만 곧 눈썹을 찡그리게 된다. 문 열린 기차 앞에서 클러치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열 걸음도 안 되는 벤치에서 분실물을 발견하고 허탈한 웃음을 흘린다. 결국 티켓을 환불하고 조금 늦은 기차에 몸을 싣는다. 7호차 창가, 꽤 단순한 남녀가 사이좋게 앉아 도시락을 먹는다. 그렇게 다시 소소한 행복을 누린다.





광안리 해변. 해질 무렵의 바다를 사랑한다. 이곳에 오면 이유 없는 애정이 샘솟곤 한다.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여행했던 도시의 해변에서, 카메라 렌즈 앞에 선다.  어깨동무가 최선이던 그때를 떠올리며 당신에게 바짝 붙어 미소 짓는다. 2년 전 겨울과 지금, 변한 게 있다면 아마 사랑의 깊이가 아닐까. 나란히 선 우리의 모습이 자연스럽고 다정하다는 것, 따듯한 서로의 눈빛이 흘러간 시간을 증명해준다. 머지않아 저녁 해가 모습을 감추고 밤이 찾아온다.


그 순간,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Rachmaninoff cello sonata 2악장 틀어줘.” 빈은 말한다. 적어도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이 순간을 즐기라고. 단칼에 거절당할 줄이야. 결국 오선지와 수많은 음표를 잠시 잊고 자유를 즐기기로 한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며 밤바다를 걷는다. 불 켜진 광안리 해변, 어쩐지 뜨거운 국물이나 가벼운 음식이 먹고 싶었지만, 그의 시선은 치킨집으로 향했다. 고민 끝에 바다가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치킨을 주문한다. 대화 주제는 음식으로 이어진다. 과자를 먹을지, 케이크를 먹을지. 얼마나 높은 칼로리가 몸에 쌓일지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

집으로 돌아온 밤, 식탁 위로 달콤한 야식이 차려진다. 초콜릿과 얼그레이 케이크, 와인, 그리고 아이스크림. 화면에서는 렌트의 주제곡이 흘러나오고, 창문 너머에는 광안대교 불빛이 시도 때도 없이 색깔을 바꾸고 있다. 케이크와 커피를 먹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커피는 강한빈네 집이 맛있는데.”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그럼 시집 오든가.” 커피 한 잔 마시겠다고 결혼을 결심하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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