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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r 07. 2020

우리의 숲에 쌓인 소박한 기억

차곡차곡 모아둔 당신과 나의 작은 이야기

가을을 보내는 동안 자주 울었다. 그가 물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지 않냐고. 그러면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당신이 곁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할 정도로. 그럴 때마다 빈은 나를 달래기 위해 사각지대를 찾았다. 눈물을 숨길 수 있는 비밀의 공간. 든든하고 안전한 방공호가 생긴다. 여기에는 마법이 있다. 하지만 마법에 빠지는 사람은 오직 두 명뿐이다. 위로와 사랑은 숲을 만들고 마음의 파도는 그 옆에서 잔잔해진다.


카레와 김치찌개, 레몬 소르베, 영화 전 팝콘, 그리고 빈. 나 홀로 자취 라이프에선 상상할 수 없었던 집밥과 찰나의 행복이 차곡차곡 쌓인다. 그는 순식간에 요리를 마치고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맛있게 드세요.” 집주인은 식탁 앞에 앉아서 수저를 들기만 하면 된다. 가끔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일로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게으름을 피웠지만, 그것마저 즐거울 따름.

요리사가 생겼다는 이유로 부엌과 멀어지려나. 현모양처의 꿈을 잠시 미루게 될지도 모르겠다.




11월, 반가운 인연들을 만난다. 태국 음식을 먹으며 방콕의 기억을 떠올린다. 거리마다 땅콩 가루가 흩뿌려진 팟타이를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 여행자들이 있었어. 그중에  명은 나였고.” 뜨거운 국물이 몸을 녹이고 다정한 시간이 흐른다. 수연이는 환상 속 동남아를 꿈꾸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고 나서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이번엔 성현이와 유럽에 갈 거라고. 학기가 끝나면 또 많은 추억과 할 말이 잔뜩 쌓일 테다.

제비다방. 독특한 무늬의 벽지와 식탁보, 주전자, 촛불이 있는 곳. 몇 달 전에만 해도 덥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겼는데, 어느덧 겨울이 되었다. 성현이는 단팥 라테를, 수연이는 캐모마일을 마신다. 라디오에서 오래된 캐럴이 흐르는 동안 밤이 깊어간다. 저녁 여덟 시, 넓은 나무 식탁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눈다. 그들의 4주년을 축복하거나 그간의 근황을 나열하면서. 늦은 밤, 다음을 약속하며 흩어진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하는 순간은 늘 아쉬운 법.




“학기 끝나면 멀리 나가 볼까?”
“나는 어딜 가는 것도 좋지만, 이런 시간이 더 좋아. 그냥 집에서 떠들고 맛있는 거 먹고.”
“가고 싶은 곳 없어? 넓은 세상을 함께 느끼고 싶지 않아?”
“니가 있는 곳이 내 세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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