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 간 이유
설 연휴가 끝나갈 때쯤 핸드폰에 찍힌 부재중 두 통. 안동으로 돌아간 사촌 동생이었다. 페이스톡을 걸었더니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무 말도 못 하는 막내 준영이가 화면에 잡힌다. 그새 누나가 보고 싶다며 울었다는 말에 안동에 놀러 가겠다고 약속한다. 하루 종일 옆에 와서 숨바꼭질을 하자고, 놀아달라고 조르던 준영이의 모습이 아른거려서 잠깐 울컥한다.
- 며칠 전에 적어둔 일기의 한 부분. 내가 안동으로 향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안동에 사는 삼 남매를 보러 안동 터미널로 향한다. 이 아이들은 나를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중 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 준영이의 서글픈 눈물이겠지. 저녁 일곱 시쯤, 감자탕 가게에 도착했다. 놀이방에서 농구 시합을 한 후, 배부른 식사를 마쳤다. 그런 뒤에는 길 건너에 있는 진저 쿠키 가게에 들렀다. 배가 부르다며 밥을 반이나 남긴 아이들은 정신없이 쿠키와 초콜릿을 손에 집고 함박웃음을 짓는다.
늦은 밤, 양치질을 하려는 누나를 막는 둘째 박진영. “누나, 이따 뭐 안 먹어? 하지 마.” 의지가 부족했던 나는 달콤한 제안에 행동을 멈췄다. 결국 감자탕이 다 꺼지지도 않은 뱃속에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털어 넣는다. 다 같이 모여 이글루 게임을 하고 레모네이드를 마신다. 쪼꼬미들의 취침시간이 넘은 열 한시. 한 방에 다닥다닥 누워 눈을 감는다.
“내일 일어나자마자 자기가 꾼 꿈 말해주기.”
칠 세 박준영은 아침 식탁에 반항하다 엄마와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어린이집을 빼고 수요일 오전을 누나와 함께 보내기로 한 것. 울상을 짓던 그는 금세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고 춤을 춘다. 이런 아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첫 번째 목적지는 월영교. 찬란한 아침이 강가에 내린다. 그 순간을 카메라 안에 다 담아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벅찬 하루가 된다. 준영이가 없었다면 홀로 쓸쓸한 아침을 보냈겠지.
월영교 구경을 마치고 봉정사로 향한다. 우리나라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천년고찰이다. 20분쯤 달렸을까, 입구를 빼곡히 채운 소나무가 우리의 방문을 반기는 듯했고, 오래된 정자는 우직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준영이는 트렁크에 있는 킥보드를 꺼내더니 열심히 달린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뿌리의 두께와 짙은 나무 색깔, 마당을 지키는 댕댕이, 한지를 붙인 문. 안동에 처음 온 나는 낡고 오래된 것에 마음을 빼앗긴다. 겨울바람이 잠잠해지고 봄이 오면, 이곳은 어떤 색으로 채워질까. 언젠가 꽃이 핀 안동을 다시 찾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