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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06. 2019

여름으로 가는 길

5월의 남원 산책

예배를 마친 오후, 남원으로 향한다. 초록이 뒤덮은 산이 저마다의 빛을 흩뿌리고 익숙한 길은 평온을 준다. 무더위를 고려한 점심메뉴는 냉면. 식사를 마친 후 천변 산책에 나선다. 감탄사를 연신 내뱉게 되는 맑은 날씨와 포근한 구름 아래, 과자 한 봉지를 뜯는다. 오늘은 어린이 날이니까.




정자에서 내려와 초록이 된 벚나무 터널을 걷는다.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완연한 봄이더니, 어느새 여름옷을 갈아입은 이곳. 강가 옆에는 정원이 있다. 타는 태양 아래 최선을 다해 피어 있는 꽃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 너머로 오리배를 탄 어느 가족이 보이고, 자전거를 타고 바람을 맞는 이들도 있다. 결국 긴 산책을 뒤로한 채 광한루에 가기로 한다.


광한루에 여름이 내렸다. 더위에 지친 세 사람은 달콤한 간식을 찾아 나선다. 줄이 긴 그네와 늙은 버드나무, 연못을 유영하는 잉어들, 물가에 비친 바닥의 풍경, 소풍을 즐기는 가족들, 그리고 우리. 몇몇은 그늘로 몸을 피하지만, 아이들의 손을 잡은 부모님은 햇빛 아래 선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엄마와 아빠 품에 안겨 울고 웃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다람쥐통에서 구르기 연습을 하거나 매년 크리스마스엔 산타 할아버지와 루돌프를 기다렸던, 철길을 따라 걷고 아빠 뒤를 쫓아 산에 올랐던 그때, 나는 배웠다.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오후 여섯 시, 일몰이 시작될 때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수풀과 나무 위로 내린 여러 빛깔에 취해 눈을 감는다. 숲이 주는 아름다움은 감히 비할 수 없다. 계절이 변하고 말의 온도가 짙어지는 동안, 제자리를 지키는 무언가가 있다. 어디선가 멈춰버린 낡은 기차역, 선로 옆의 나무들, 정갈한 글자로 적힌 간판, 손에 들린 달콤한 간식. 이 모든 건, 우리가 여름을 견뎌낼 힘을 준다.


5월의 보랏빛을 궁금해하던 내가 마주한 등나무 터널. 동화에 나올 법한 풍경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는 어떤 말이 잘 어울릴지 고민한다. 그러다 꽃 옆에서 깨닫는다. 우리는 그저 자연에 감사하며 찰나의 순간을 깊이 향유하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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