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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pr 30. 2019

바다 보러 갈래?

여름의 파도 소리, 그 옆에 남겨진 우리의 제주

앞집의 공사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극명하게 갈린다. 몸에 닿는 바람에 눈을 뜬다. 동복리, 느긋한 여유를 부리기 좋은 마을이다. 오전 여덟 시 반, 약속된 조식 시간에 맞춰 놀이터로 향한다. 보리빵 위에 녹은 체다치즈와 상큼한 과일 냄새가 아침을 깨운다. 게다가 싱싱한 샐러드에 연잎차라니, 풍요로운 식탁이다.








서쪽으로 넘어와 여행을 계속한다. 아빠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찾은 주상절리. 폭포가 세서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를 보고 우울해진다.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문자를 모른 체하고 산책을 이어간다. 타는 태양 아래, 이 여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면서. 깎여진 절벽을 집어삼킬 것 같은 폭포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쏟아진다. 나무 아래 그늘과 청량한 파도 빛깔에 감사하며 걸음을 멈춘다. 산책로 옆으로 솟은 야자수 옆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남긴다.




오설록에 도착한 우리가 향한 곳은 아이스크림 매장. 더위를 식힌 후, 녹차밭의 싱그러움을 느낀다. 낮게 깔린 구름 아래, 햇살을 받은 여자들의 미소가 반짝인다. 일찍 귀가하자던 아침의 약속이 자연스레 무산되면서 해가 저문다.






“여덟 시야. 바다 보러 갈래?”

백 걸음이 채 되지 않은 곳에 바다가 보인다. 반짝이는 여름의 협재가 보이자 미소가 번진다. 겨우 네 시간을 잤을 뿐인데 아침 산책이 달게만 느껴진다. 엄마의 슬리퍼를 신고 바다에 발을 담근다. 만약 물고기로 태어났다면 협재의 맑은 물을 헤엄쳐 다녔겠지, 하고 상상한다. 필름이 돌아가는 소리가 멈출 때까지 톱니바퀴를 굴린다. 곧 다시 그리워질 파도나 돌길 위에 선 내 모습을 담기 위해 버튼을 누른다. 여전히 아름다운 비양도에서.





오후 3시 33분, 한림과 애월 사이. 육지로 돌아가는 언니와 오른이는 공항으로 떠나고 남은 두 여자는 해안도로에 남는다. 사서 고생을 즐기는 나는 가진이에게 말한다. “해안산책로 따라 걸어 볼래?” 무모한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와 도보 여행을 시작한다. 편하게 차를 타고 다니다 뚜벅이가 되니 감수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결국 무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입고 있던 가디건을 벗는다. 평지를 걸었을 뿐인데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마주친 엄청난 해변의 풍경.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손에 들린 짐에 발이 묶이고 만다. 다음엔 몸만 가볍게 와서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해야지.






저녁 여덟 시 다이닝룸, 녹초가 된 두 여자는 시장에서 사 온 떡볶이와 오꼬노미야끼, 딱새우 회를 펼쳐놓고 호화로운 만찬을 즐긴다. 비행기를 하루 늦춘 우리가 한 일이라곤 캐리어와 사투를 벌이며 땡볕에 걸은 일뿐. 하지만 마지막 날 우리의 모습은 시간이 흐른 어느 여름, 서로를 더 돈독히 여기는 추억으로 남으리라. 뚜벅이의 긴 여정에 동참해준 그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안녕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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