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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pr 04. 2019

Prolog: 나 홀로 유럽

휴학생이 홀로서기를 결심한 이유

쓸데없는 로망에 사로잡혀서 휴학을 결심했다. 낯선 세상을 갈망하며 저축을 결심했고, 호텔에서 피아노를 치며 돈을 모았다. 1년 반 동안 통장에 모은 월급 600만 원과 방콕에서 남겨온 300달러. 내가 가진 전부였다. 이제 어디로 갈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과 유럽의 많은 도시가 선택지에 적힌다. 하지만 목적지를 정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동경해온 스페인 땅이 아른거리다가도 오래된 음악이 궁금해져서. 목적을 분명히 하고 났더니 결론이 난다. 내가 선택한 길에 확신을 갖는 것.






지도에 그려진 유럽의 여러 나라와 도시를 보며 여행 계획을 세운다. 러시아,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스페인. 일곱 개의 나라를 순위에 올린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사랑하는 작곡가인 라흐마니노프의 출생지. 해서 첫 번째 목적지가 러시아로 정해진다. 모두가 설국이 펼쳐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상상하겠지만, 혹한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던 나는 봄을 선택했다. 어깨의 피로를 덜어주고 싶기도 했고. 하지만 내 배낭 안엔 사계절 옷이 다 있다. 눈 쌓인 융프라우에서 입을 패딩, 스페인의 뜨거운 날씨에 대비한 얇은 여름옷, 저녁 산책에 필요한 겉옷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

아빠에겐 공부를 하러 간다고 둘러댔다. “공부하러 가는데 숙소 예약을 하나도 안 하고 그렇게 무작정 간다는 게 말이 되냐? 경비가 얼마나 드는지도 모르고?” 날카로운 잔소리가 걱정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줄 알게 된 걸까? 괜찮다는 말만 연신 반복하고 식탁에 앉는다. 한동안 먹지 못할 할머니의 나물 반찬을 꺼내고 엄마가 해준 계란 프라이로 만찬을 즐긴다. 딸이 떠날 생각에 밥을 못 넘기겠다는 엄마, 조심히 다니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는 아빠, 손수건과 티슈를 한 아름 안겨주시는 할머니.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얼마나 흘렀을까, 숨 막히는 고독이 공기 중으로 퍼진다. 어쩌자고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온 건지. 머리까지 올라오는 배낭을 메고 한숨을 내쉰다. 출발도 전에 겁을 먹다니. 아,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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