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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26. 2019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프라하에 오길 참 잘했다

어제는 침대에 누워 늦은 오후까지 잤다. 그러다 스산한 바람과 빗소리에 깨어 뭘 먹을지 고민했다. 건물 1층 레스토랑이 괜찮다는 말에, 곧장 내려가 리조또를 먹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거실에 모인 여행자들과 늦은 밤까지 카드놀이를 했다. 승자의 특권은 양치질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는 것.
포항에서 온 준호오빠는 내가 드라마 주인공 아역을 닮았다며 미풍이라고 부른다. “미풍이 왜 이래 인상 쓰노. 니 조커 가지고 있제.” 역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게임의 결판은 온전히 운이었으니, 승자는 나였다. 기분 좋게 양치질을 하러 나왔더니 모두 칫솔을 들고 서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겼는가.





아침 열 시, 준비를 마치고 숙소를 나선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스태프 언니와 마주친다.
“너 프라하성 간다며 왜 이쪽으로 와?”
“여기로 가면 되는 거 아니에요?”
“가는 방법도 모르고 그냥 걷는 거야?”

길치라 자주 길을 잃지만,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멋진 곳을 발견한다고 말했다. 진지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일단 따라오라는 재림언니.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성 아래 있는 백조의 호수에 도착했다.





프라하에 온 지 3일이 지나서야 카를교를 찾았다. 다리 위에 있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막 들뜨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속삭이는 연인과 나란히 걷는 노부부, 트럼펫 부는 아저씨, 예쁜 도시를 종이에 담는 할아버지. 프라하성이 그려진 그림을 보고 지갑을 열었다. 누군가의 시간을 간직하기로 한다.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전망대. 프라하를 찾은 여행자들이 전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파가 넘쳤다. 가판대에 놓인 파프리카와 감자를 먹으며 프라하 전경에 감탄하던 중, 익숙한 멜로디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따스한 네 사람의 눈빛과 그로 인해 행복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오늘도 평온한 시간을 살아내야지.






오후 세 시, 카메라가 먹통이 되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버렸다. 벤치에 앉아 버튼을 눌러봐도, 뭐가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기계에 서투른 내가 고장 난 카메라를 고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지만. 사진 찍는 일을 사랑하는 내게 카메라 없는 여행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바이올린을 켜는 세 남자와 첼로 연주자. 그들을 둘러싼 청중들 틈에 섞여 침을 삼켰다. 뜨거운 음악이 흘렀고, 활의 움직임은 거센 파도를 만들었다. 처음 듣는 콰르텟 곡에 흠뻑 취한 채 박수를 보냈다. 길 위에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사람들, 그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 프라하에 오길 참 잘했다.






야경을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거실에 있는 현우오빠에게 슬픔을 토로하자, 오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여행 중에 노트북이랑 카메라 도둑 맞고, 카드 복사당했어. 고장 난 카메라는 고칠 수 있잖아.”
로마에서 런던까지 두 발로 걸었고, 친구의 가족여행에 합석해 사파리 투어를 다니기도 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문득 포레스트 검프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어떤 걸 얻게 될지 전혀 알 수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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