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May 27. 2019

여기가 음악의 도시라면서요?

누군가 파스타를 먹으러 이태리에 간다길래, 나는 음악을 들으러 빈에 왔다

빈에서 맞는 아침,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피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집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 납작 복숭아와 바나나, 요플레, 그리고 과자 몇 개를 샀다. 과일을 품에 안을 때면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밀려든다. 공원에 앉아 건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하루를 시작한다.





미사를 위해 헬덴 광장으로 향했다. “Geht’s dir?” 달콤한 목소리로 분주한 나를 붙잡는 할아버지의 인사. 미사 15분 전, 창구에서 표를 받아야 했지만 어쩐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Sehr gut, und du?” 결국 아는 독일어를 총동원해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눈다.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오스트리아에 대해 찬사를 보내는 할아버지에게 지극히 동의한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아쉬운 듯 인사한다.






오전 열한 시, 성당 가득 아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단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작게 노래하는 이들의 모습에 매료되고 만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빈 소년 합창단을 빈에서 보게 될 줄이야. 미사가 끝난 후, 프라하에서 같은 방을 썼던 친구와 마주친다. 그녀도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왔다고 했다. 반짝이는 순간에 감동하고 힘을 얻는 우리는 서로의 남은 여정을 응원하며 헤어졌다.






해질 무렵, 미카엘 광장에 굵은 첼로 선율이 낮게 깔렸다. 광장에 모인 모두가 걸음을 멈췄다. 유모차를 끌거나 자전거를 탄 사람, 맥주 캔을 손에 든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음악이 흐르는 동안 지난 몇 주를 회상한다. 모스크바 음악원과 예술극장,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 프라하 카를교, 그리고 빈. 누군가 파스타를 먹으러 이태리에 간다고 하길래, 나는 음악을 들으러 오스트리아에 왔다.


여러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정확한 방향을 정한 건 아니지만, 어떤 연주자가 되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배웠다. 오롯이 음악에 집중할 것, 감정에 동요되지 않을 것, 청중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좋은 소리를 찾을 것, 즐길 것.





멋진 연주를 듣고 집으로 향하는 길, 이제는 하루에 20킬로를 걷는 일이 당연해졌다. 발바닥이 욱신거리고 가끔 힘이 들지만, 계속해서 걷는다. 많은 도시를 더 깊이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프라하에 전하는 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