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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May 28. 2019

아, 용기 내길 잘했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광장 무대에 세워진 쫄보의 연주

일곱 번째 도시에 도착한다. 거리를 메운 새소리와 익숙한 향이 번지는 잘츠부르크. 비엔나와 확연히 다른 전경이 펼쳐졌다. 도시 뒤에 웅장하게 모습을 드러낸 설산과 청량한 공기, 자연의 소리들. 모든 것들이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벌써 이 도시에 흠뻑 빠진 기분이 들었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거리로 나온 오후, 같은 숙소에 묵는 여행자들이 인사를 건넨다. 대만에서 왔다는 두 사람과 함께 다리를 건넌다. 모차르트 생가를 구경하기로 했지만 건물에 도착했을 때 폐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결국 곧장 성에 가기로 한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피었지만, 막연한 동경이 생기는 이 도시. 근처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러 친구들과 젤라토를 주문한다. 아이스크림을 기다리는 동안 대만에 갔던 기억을 꺼낸다. 컨딩에서 맞았던 바람, 타이루거 협곡의 계곡과 할아버지 나무 같은 작은 조각으로 퍼즐판을 완성시킨다.






호엔 잘츠부르크 성. 푸니쿨라를 타지 않고 정상에 올랐다. 문을 열고 나가자마자 펼쳐지는 그림 같은 풍경. 도시와 자연의 경계에 감탄한다. 얼굴에 닿는 바람과 강가 옆의 연인들, 성 위에서 바라보는 이곳, 매일 밤 8시에 사운드 오브 뮤직을 상영해 준다는 호스텔의 공지까지. 정말이지 낭만이 가득한 도시다. 대만 친구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눈빛을 반짝이지만, 다른 곳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넋을 잃은 채 사색에 잠긴다.






해질 무렵, 성에서 내려와 한식당으로 향한다.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는 두 사람의 말에 기뻐하면서. 그토록 간절했던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높은 의자에 걸터앉는다. 타이완 친구들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일본에 가 봤냐는 질문을 받는다. 일본에 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다 한국어가 튀어나온다. “그 뭐지..” 옆에 있던 여행자가 대신 입을 연다. “radioactivity, 방사능 때문에 안 간다고?”






그렇게 만난 연우와 그 옆자리에 앉은 또 한 명의 한국인. 우리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한식당을 극찬하며 친분을 쌓는다. 타이완 친구들과 헤어진 후, 그들과 함께 모차르트 광장으로 향했다. 기념비 옆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에서 여러 곡이 흘러나온다. 젓가락 행진곡, 베토벤 소나타, O mio babbino caro. 반가운 멜로디에 미소 짓는 내게 연우는 묻는다. “너 전공이 뭐야?”




괜히 피아노를 친다고 말해서 갑작스러운 무대에 세워진다. 피아노를 안 친지 한 달이 지났으나 계속 눈치를 주는 공대생의 시선을 저버리지 못했기 때문. 의자에 앉자 로날드의 프렐류드가 떠올랐다. 떨리는 마음을 모른 척하고 건반에 손을 올린다. 작은 용기로 시작된 연주. 스산한 바람이 불었고 악보는 기억나지 않았으며 종종 이상한 화성이 울리기도 했다. 하지만 몇 번의 실수 끝에 담대해진 연주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흘린다. 켜진 등불 아래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보냈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최선을 다한 밤. 아, 용기 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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