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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03. 2019

당신의 아름다운 기억은 무엇인가요?

혼자였다면 끔찍이 우울했을 그 밤이, 함께라는 이유로 눈부신 기억이 된다

오늘은 슈탄저호른에 가는 날. 사실 전날 밤, 같은 방을 쓰는 한국인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갑자기 결정된 일이다. 쿱에서 산 빵과 요플레를 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모두가 좋다가 외치는 리기산을 포기하고 계획에도 없던 케이블카를 탔지만, 후회는 없었다. 꿈같은 대자연을 만났다.

“너 뭐 좋아해? 난 진짜 매운 거 먹고 싶어. 김치찌개나 부대찌개 같은.”
“나는 순대국밥. 이제 마트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 건 정말 지겨워.”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숨이 찼다. 이래서 고산 지대를 조심하라는 거구나. 가영이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상에 도착했다. 언덕 아래 피어오르는 긴 연기.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여행자들이 보였다. 빵과 요플레로 아침을 해결한 우리는 침을 삼켰다. “안 되겠어.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얼마 후,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온 연락 한 통. 그녀는 돈을 보냈다며 이렇게 말한다. -물가 비싸다고 라면만 먹지 말고 맛있는 거 사 먹어.






루체른의 광활한 대지와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내려가는 길에 나를 붙잡은 것은 언덕 위의 트롤리어스. 이제 막 피고 있는 노란 꽃들이 속삭이는 것 같았다. 넘어지고 실수하고, 가끔은 눈물을 흘리기도 하겠지만 그 모습은 아름답고 귀하다고. 또, 눈부시다고 말이다. 그 희미한 빛에 위로받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숙소로 돌아와 숙면을 취했다. 한 3시간쯤 잤을까, 잠으로 흘려보낸 오후가 아깝지 않았다. 여행한 지 한 달째, 피로를 푸는 일은 꼭 필요했으니.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창밖을 보니, 어둑해진 저녁이었다. 세 여자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배고픔을 잊기 위해 입을 연다. 오늘 다녀온 슈탄저호른과 트롤리어스, 그리고 바비큐를 먹던 여행자들에 대해. 또리는 리기산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가영이는 감탄사를 연신 내뱉는다. 그러는 동안 스테이크와 샐러드, 이름 모를 음식들이 테이블 위를 덮었다.

저녁 아홉 시,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인 줄 알았던 비는 폭우로 이어졌고, 우리는 고민 끝에 우산을 빌렸다. 빗속으로 뛰어들자 어깨에 찬 기운이 스민다. 큰 물웅덩이에 신발이 흠뻑 젖고 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웃음이 났다. 혼자였다면 끔찍하게 우울했을 밤이, 함께라는 이유로 눈부신 기억이 된다. 이로써 또 하나의 교훈을 얻는다. 인생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우리는 함께일 때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사랑스러운 친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Willkommen im Luce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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