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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10. 2019

인터라켄과 그들의 부재

베른의 한낮, 잃고 싶지 않은 평화가 마음에 닿았다.

어제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서인지 몸이 쑤셨다. 호스텔 식구 중 두 명은 다른 나라로 넘어갔고 주영이는 체르마트로, 윤오오빠는 베른에 간다고 했다. 체르마트와 베른을 두고 고민하다 좀 더 가까운 스위스의 수도를 택했다. 벌써 익숙해진 인터라켄 동역. 기차에 올라 차창 너머로 펼쳐지는 청량한 하늘과 호수를 두 눈에 담았다.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오빠를 라흐마니노프의 늪에 끌어들인다. “진짜 신기하다니까. 화성에 알 수 없는 힘이 있어. 물론 그 수많은 음표를 무대 위에서 다 치고 내려오는 일은 기적이지만.”





베른에 도착한 어느 한낮, 동화책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다. 모든 나라의 수도는 복잡하다는 편견을 버리기로 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따뜻하고 고요한 도시와 금세 사랑에 빠진다. 정원으로 향하던 중, 플리마켓이 열린 걸 보고 환호성을 지른다. 가판대에 진열된 해먹과 자수 지갑, 작은 털장갑과 예쁜 옷을 보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숲 속을 다니며 해먹을 설치하고 낮잠을 자는 일. 상상만으로도 황홀해지지만, 꽉 찬 배낭을 생각하며 물욕을 다스린다.







 두 여행자는 베른의 어느 골목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밀가루는 그만 먹고 싶었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이태리 식당에 들어가 메뉴판을 펼친다. 오늘은 까르보나라로 결정. 아무래도 한국에 돌아가면 파스타는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음식이 나오면 재빨리 식전 기도를 하고 포크를 들곤 한다. 크림을 입에 잔뜩 묻히면서 먹고 싶은 한국 음식을 나열했다. 예를 들면 엄마의 가지볶음, 계란 프라이, 떡볶이, 그리고 체리마루 같은 것들. “제일 생각나는 한국 음식이 뭐야? 나는 뭘 먹으면서 먹고 싶은 음식 말하는 게 좋더라.” 베른의 따뜻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잃고 싶지 않은 평화가 마음에 닿았다.







식사를 마친 오후, 한산한 거리를 지나 호수 옆 벤치에 앉았다. 입 안에 남은 느끼함을 과일로 달랜다. 목이 따가울 때까지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를 알아가는 일은 즐겁다. 오빠와 나는 수다를 위해 베른을 찾은 사람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다. 한참 후에야 자리를 정리하고 장미정원으로 향한 우리. 언덕을 오르자 그림 같은 풍경이 시야에 가득 찼다. 장미가 만개한 정원 아래 흐르는 강과 마을, 그 옆으로 모여 있는 여행자들. 어느덧 스위스의 마지막 장면이 마음 어딘가에 엷게 채색된다.







어느덧 각자의 길로 흩어질 시간. 부다페스트로 가는 2번 플랫폼에 손을 흔들고 인터라켄행 기차에 오른다. 아름다운 도시에서 멀어지자 잠이 쏟아졌다. 함께 지내던 이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겨진다는 사실에 슬퍼졌다. 혼자인 시간에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나는 여전히 모든 일에 미숙하다.

깊은 밤이 내린 인터라켄의 골목을 헤매며 숙소로 향한다. 오늘은 반드시 요리를 해 먹겠다고 다짐하며 주방을 찾는다. 버튼을 누르고 쌀이 익길 기다리며 소파에 앉는다. 일기를 쓰고 멀리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중간점검을 위해 인덕션에 가 보니, 김이 올라오지 않았다. 버튼이 0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었겠지. 결국 오늘도 요플레와 바나나로 끼니를 대신한다.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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