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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11. 2019

네 청춘의 마테호른 하이킹

스위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체르마트에 가다.

스위스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오늘은 가장 멀리 있는 도시로 향했다. 오후 열 두시, 늘 동경해오던 체르마트에 도착했다. 인스브루크로 떠나는 주영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작별한다. 일기 예보에는 먹구름만 가득했으나, 예정대로 고르너그라트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정상으로 가는 길, 하이킹을 함께 하기로 한 동행들과 짧은 담소를 주고받는다. 긴 기차 여행 끝에 도착한 산 꼭대기. 찬 공기와 빗방울이 한데 섞여 매서운 바람을 만든다. 안개와 구름이 걷힐 때까지 점심을 먹기로 한 우리. “아, 진짜 못 보고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아요.”






결국 기대한 장면을 뒤로한 채 하이킹을 시작한다. 조금 험난한 산길, 구글맵에 의지하기도 하고 종종 헤매면서 걸음을 더한다. 꽤 잦은 침묵과 정적이 흘렀지만, 어쩐지 편안했다. 몇 마디 말 보다 의미 있는 세 사람의 미소 덕분에. 마테호른을 보겠다고 모인 우리는 목적을 잊은 채 산 중턱에 멈춰 대화를 나눈다. “오래전에 스미스소니언 사진전에서 마음이 동하는 사진을 봤어요. 체르마트에 해가 뜨면 빨갛게 변하는 마테호른의 산 꼭대기요. 그걸 보고 스위스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긴 산책 끝에 도착한 마을. “저게 뭐라고 뒤를 돌아보고 아쉬워하냐. 근데 그만큼 기억에 남을 것 같아. 우리 사진 찍자!” 젖은 머리를 하고 활짝 웃었다. 눈 덮인 산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흘러간 시간에 감사한다.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은 정상의 언저리일 뿐, 땅을 밟은 순간과 그곳에 흘린 미소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으니.







헤어지기 아쉬웠던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른 저녁 식사는 스위스 전통 음식인 퐁듀와 고기. 치즈에서 술맛이 나긴 하지만 꽤 중독성 있다. 샐러드와 닭가슴살을 먹으며 마지막 만찬을 즐긴다.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 음식만큼 맛있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식사를 마친 여행자들은 쿱에 들러 쇼핑을 시작한다. 언니와 오빠들은 야식으로 먹을 음식을 잔뜩 사고, 나는 체리맛 아이스크림을 고른다. 계산대 앞, 모두의 손에 납작 복숭아가 들려 있다. “아, 우리 다음에는 한국에서 보겠죠? 그때도 같이 하이킹해요.”






인터라켄에 도착하자 비가 내렸다. 그리운 발머스 식구들에게 투정을 부린다. 우산도 없는데 비가 온다는 말을 꺼내면서. 곧장 버스를 타라는 정욱오빠와 비옷을 줄 걸 그랬다는 윤오오빠의 말에 추위가 사그라든다. 생명과도 같은 구글맵이 말썽이라 조금 헤매긴 했지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주영이의 부재중 전화에 괜찮다고 답한다. 아아, 벌써 마지막 밤이라니.

잎이 떨어진 자리에 물든 바닥의 흔적과 아침 공기가 여행의 끝을 붙잡았다. 배낭과 사투를 벌이며 엄마에게 하소연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다 보니 스위스에 열흘을 보냈다. 사랑스러운 나라를 떠나며 곳곳에 흘린 흔적들을 밟았다. 자전거를 타고 달렸던 튠 호수, 매일 출근 도장을 찍었던 인터라켄 동역, 호스텔의 나무 냄새와 은은하게 번지는 초록빛. 아쉬움을 남기고 파리행 열차에 오른다. 안녕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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