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Apr 30. 2019

내가 사랑하는 섬

여전히 눈부신 제주의 여름, 사랑하는 이들과 보낸 날에 대하여

5번 게이트, 공항 옆으로 우뚝 솟은 야자수를 보면서 제주에 도착한 걸 실감한다. 배고픈 네 여자는 연동에 있는 수현국수로 향한다. 어제까지 응급실에 누워 있던 위염 환자는 조심히 젓가락을 든다. 뜨거운 국물이 목으로 닿자 미소가 번진다. 모두 입을 모아 점심 식사를 극찬하고 가게 문을 연다. 여름 제주를 느끼러 출발!








첫 번째 코스는 절물자연휴양림. 차에 탄 우리는 클래식을 들을지 가요를 들을지 옥신각신 하다 라디오에 주파수를 맞춘다. 지지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우리의 여행. 가는 빗방울이 창문으로 떨어지는 것도 잠시, 해가 뜬다. 삼나무의 초록빛이 사랑스러운 숲에 도착한다. 전체 코스와 소요시간을 보더니 기겁하는 친구들. 결국 가장 짧은 산책로를 택한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는 걸로도 모자라 절물의 최단 코스를 선택하다니. 23년 뚜벅이 인생에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이번 여름은 함께하는 데 의의를 두기로 한다. 삼나무 옆에서 한 번, 수국 옆에서 한 번. 단란한 네 사람의 모습을 남기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한다.





오후의 동복리. 고작 한 달이었지만 내가 지냈던 바닷가 옆 마을에 도착한다. 한 겨울의 구좌읍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바람에 휜 소나무를 지나 익숙한 길 위에 선다. 그리고 자문한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으로 이곳에 왔을까. 작은 희망사항을 이루려고 항공권을 끊었거나, 나의 어린 도전을 기억하기 위해 마음을 정했던 것?


야자수 위로 떨어지는 해가 저녁을 알리지만, 곧 불이 켜지고 환한 밤이 시작된다. 함덕에 내릴 새로운 색을 기대하며 모래사장에 선다. 오늘은 또 얼마나 찬란한 빛깔이 바다를 덮을까. 나는 이 아름다운 자연 앞에 얼마나 겸손해야 할까. 같은 고민을 가지고. 바닷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계획했던 서우봉 둘레길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들의 옆자리에서 행복해졌으니 계획을 지키는 건 중요치 않게 된다.




집에 돌아와 늦은 수다를 떠는 여자들. 약을 먹어야 하는 환자는 맥주를 생략하고 옆 사람들의 이야기에 취하기로 한다. 남해에서 바다를 지키고 있을 군인 아저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제주에 내린 밤, 깊어지는 여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