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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25. 2019

에펠탑을 위해 달린 밤

 “비가 어느 정도 그친 것 같은데, 우리 화이트 에펠 볼래요?”

침대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자 밥 짓는 냄새가 난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일만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사랑하는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거실로 내려간다. 눈을 즐겁게 하는 계란말이와 닭볶음탕, 과일과 채소들. 부엌에 모인 한국인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맛있는 아침 식사를 마치고 주인아주머니의 요리에 감사를 전한다.






아껴둔 엄마의 가디건을 입고 숙소를 나선다. 이른 오전에 도착한 샹젤리제 거리는 한적했다. 디저트로 유명한 카페를 안다며 길을 안내하는 지현언니.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마카롱과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마카롱 안 좋아하는데, 파리에 왔으니까 먹어야 될 것 같아.”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며 얼마 남지 않은 여행을 실감한다.







오후 일정을 위해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만남의 장소는 사랑해 벽. 각국의 언어로 적힌 아름다운 말을 읽는다. 사랑의 문장을 전하는 것은 행복을 선물하는 일이리라. 네 명의 여자가 모여 나란히 걷는다. 어느 베이커리에서 바게트를 사고 근처 상점에 들러 열쇠고리와 엽서까지 사버린 우리. 여자들의 모임은 꽤 위험하다.


“언니 이거 봐요. 남자 친구가 보내준 곱창볶음.”
“와, 파리에 와서 본 어떤 예술 작품보다 아름다워.”






목적지에 가까워질 때쯤, 어디선가 흐르는 감미로운 선율에 걸음을 멈춘다. ‘Stand by me’ 원곡을 훌륭하게 재탄생시킨 연주자들과 전율이 흐르는 무대. 지나 언니와 눈빛으로 감동을 나누고 메르시 박스에 마음을 넣는다. 얼마 후 모습을 드러낸 몽마르트 언덕. 잔디밭과 벤치에 앉은 사람들이 여름을 빛내고 있었다. 웅장한 건물을 보고 감탄사를 내뱉는 언니들. 사랑이 어린 눈동자를 보소 미소 짓는다.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이들의 모습을 기억해야지.






화이트 에펠을 보겠다는 우리의 계획을 무산시켜주는 비 소식. 숙소에 돌아와 빗소리를 들으며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음식을 입에 넣으며 과자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소정아, 지현언니는 과자 하나를 3일 동안 나눠 먹는대. 넌 가능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는 소정. “아니, 나는 뜯은 자리에서 다 먹어. 그래서 안 사려고 노력하는데 그게 잘 안돼.”

몇 시간을 먹고 떠들다 보니 빗소리가 옅어진다. “비가 어느 정도 그친 것 같은데, 우리 화이트 에펠 볼래요?” 갑자기 에펠탑에 가자는 지나 언니의 말에 벌떡 일어섰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우리가 집을 나선 시각은 열 한시 반. 언니와 나는 지하철 역까지 달렸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지하철역 어딘가에서 흐르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각자의 출근길로 흩어지는 팀과 메리.


오후 11시 57분, 역에 울리는 바이올린 연주에 감탄하며 에펠탑으로 뛰는 서로의 모습이 재밌어서 웃음을 터뜨린다. 그렇게 우리는 에펠탑에 켜진 찬란한 불빛 앞에 섰다. 이 아름다움을 꼭 보여주고 싶었다며 환하게 웃는 지나 언니. 그녀의 예쁜 마음에 미소로 답했다. 광장에서는 존 레넌의 이매진이 흘렀다. 이 밤을 어떻게 글로 풀어낼 수 있을까. 에펠탑의 불빛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건, 언니의 따뜻한 말과 마음 덕분이리라. 잊지 못할 오늘을 가슴속에 잘 담아두기로 했다.

집을 돌아가는 길, 두 여자는 사랑에 관한 토론을 펼친다. 수다에 정신이 팔려 환승 역을 지나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깔깔대며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 이제 막 새댁이 된 지나 언니는 꿈같은 신혼생활을 얘기해줬고, 나는 언니의 결혼을 축복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한 밤. 사랑이 가득한 사람에게 받는 에너지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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