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Jun 25. 2019

파리에서 보낸 사흘

안녕 프랑스, 안녕 에펠탑!

아침부터 삼겹살을 먹은 우리는 방에 늘어져 게으름을 피웠다. 프랑스를 떠나는 날, 한 시도 가만히 못 있는 내가 이런 여유를 부릴 줄이야. 새삼 놀라웠다. 짐 정리를 마친 오전, 지나 언니와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리는 재래시장을 돌기로 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시장 구경을 좋아하게 됐다. 아마 여행을 시작한 이후? 가판대마다 가득 찬 해산물과 과일, 피자, 기념품 뒤로 줄 선 사람들이 보였다.
“시장에 오면 모든 게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점심 메뉴를 정하면서 마레 지구를 돌았다. 일요일에는 모든 상점이 문을 닫는다더니, 정말 문 연 가게를 찾기가 힘들었다. 아쉬운 대로 근처 플리마켓을 돌아보고 아무거나 먹자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던 중, 케밥과 비슷한 음식을 들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을 발견한다. 그들을 쫓아 골목으로 들어가 보니 이슬람 식당이 있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이슬람 음식.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작은 목소리로 옆 테이블 손님에게 묻는다. “Is this good?”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팔라펠 스페셜을 외친다. 세 명 모두 같은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는다. 얼마 후 식탁 위에 올려진 정갈한 팔라펠 스페셜. 가지와 오이, 양배추, 당근, 콩고기를 빵에 곁들여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야채와 고기를 올린 빵을 입 안에 넣자 싱그러움이 번졌다. 갑자기 건강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웃음이 났다. 그 와중에도 여자들의 수다는 빠지지 않았고.






식사를 마친 오후, 지나 언니가 가고 싶다는 서점에 들른다. 그녀의 목적은 불어로 된 책이 아닌 에코백. 언니의 환호에 취해 계획에 없던 소비를 하고 만다. 서점에서 나와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 “에펠탑은 야경도 예쁜데 낮에 봐도 정말 멋있어요. 가서 사진 찍어주고 싶은데, 같이 가도 돼요?” 그녀의 물음에 수줍게 웃었다. 역에서 나와 어제의 전력질주를 떠올리며 느긋하게 걷는다. 여전히 계속되는 음악 소리와 역 안의 사람들. 에펠탑 앞에 도착하자 쌍둥이로 추정되는 예쁜 소녀들이 보인다. 아이들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묻자 포즈를 취한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인상 쓴 모습마저 사랑스럽다니.







지나 언니는 거의 바닥에 붙다시피 누워서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준다. “일단 한 번 봐요. 다시 찍어줄까요? 아니면 뭐. 지우든 말든!” 해서 나는 결과물이 어떻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파리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 나에게 중요한 건 에펠탑이 아니라 이 순간에 잘 녹아들 수 있는 우리의 마음이었으니. “다음에는 잔디밭에 누워 하루 종일 뭘 먹거나 뒹굴어야겠어요.”


늦은 저녁, 비가 내렸다. 배낭을 앞 뒤로 멘 채 우산을 쓰고 걷는다. 버스 터미널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걱정하는 동안 날이 갰다. 여유롭게 도착할 줄 알았지만, 오늘도 역시 헤매는 길치의 하루. 다사다난한 방황 끝에 겨우 버스에 올랐다. 꼭 가고 싶었던 몽생미셸과 재즈바는 구경도 못했지만 미련은 없다. 파리에서 보낸 사흘이 무척이나 소중했기 때문에. 멀어져 가는 파리를 마음에 담고 잠을 청한다.

Merci paris!


매거진의 이전글 에펠탑을 위해 달린 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