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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26. 2019

가우디의 유언이 세운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일단 후문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위를 봐선 안돼요.”

16시간짜리 야간 버스를 타겠다고 결심한 나 자신을 원망했다. 목베개가 간절했지만 배낭을 짐칸 깊숙이 넣어버렸다. 고로 목베개는 짐칸 어딘가 실려 있을 배낭 안에 있다는 뜻. 할 수 없이 목의 뻣뻣함을 견디며 잠든다. 눈을 뜬 아침. 기지개를 켜고 시간을 확인한다. 창밖으로 비가 내렸고 배가 고팠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건 호밀빵뿐이었다. 배고픔을 참기로 한다. 파리와 스페인 사이를 달리던 버스는 국경을 넘는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날이 갠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구름은 재빨리 움직였고, 나는 바르셀로나에 가까워졌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반, 더 머물고 싶은 마음 반.






스페인에 도착했다. 바로 집 앞에 해변이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밀가루에 지친 위를 달래는 일. 오늘은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시장에 들러 과일 주스를 마시고 티라미수를 먹는 걸로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한다. 비장한 각오로 숙소를 나섰지만, 한식당은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중식당에 들어가 볶음밥을 주문한다. 옆에 앉은 손님들은 테이블 가득 올려진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니 솔직히 말해봐라. 독일에서 가장 생각나는 음식이 뭐고?” 경상도 사람들로 추정되는 세 남자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두 귀를 자극하는 사투리에 고개를 돌려 물었다. “여기 볶음밥 맛있어요?”






식사를 마친 오후, 생각지도 못한 동행이 생긴다. 중국집에서 만난 세 명의 한국인과 보케리아 시장으로 향한다. 과일주스가 맛있기로 소문난 민트색 건물을 찾는다. 아저씨의 추천으로 주문한 코코넛 망고 주스. 당최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다. 코코넛과 망고를 섞은 건 개발의 오류가 아닐까? 주스 선택은 실패했지만 시장 구경은 멈추지 않는다. 스페인 물가가 싸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과일 가격이 한국보다 저렴할 줄이야. 모두가 컵과일을 손에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오빠들은 사그리다 파밀리아 성당의 가이드가 되어주겠다고 말한다. 그들은 가우디 투어의 여운을 어쩌지 못하고 다시 성당에 왔다고 한다. “일단 후문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위를 봐선 안돼요.” 가이드의 지시를 따라 손으로 두 눈을 가린다. 바닥만 보고 걷는  건 꽤 지루했지만 쏟아지는 찬사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순간, 긴장한 채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 가득 차는 성당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가우디의 유언 세 가지를 듣고 예술의 가치에 대해 고민한다. 그는 예술에 대한 엄청난 확신을 가졌던 것 같다. 자신의 일생과 재산을 다 바쳐 건물을 지을 만큼. 잘 기억나진 않지만 내가 들었던 가우디의 유언은 이랬다.
1. 내 죽음을 널리 알리지 말라.
2. 내가 죽은 후에도 성당을 계속 지어달라.
3. 전재산을 성당 건축에 써라.

스페인에서 얻은 영감은 긴 여정에 녹아들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건축물을 보고 내 선택에 대한 용기를 얻었다. 큰 감동을 전해준 동행들과 가우디의 유언에, 또 성당을 찾는 인파에. 뜨거워지는 마음을 겨우 붙잡고 근처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따뜻함이 배어 있는 골목을 지나자 야자수가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밤, 민박집주인 언니는 낡은 캐리어를 건넨다. “너 그렇게 지친 상태로 그 무거운 배낭을 메고 돌아다니게? 이거 써. 조금 낡긴 했어도 튼튼해.”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내뱉고 방으로 들어왔다. 배낭을 정리하고 캐리어에 짐을 옮긴다. 그러던 중, 여행의 조각을 발견한다. 프라하에서 산 그림과 파리에서 산 오르골, 책 속에 끼워둔 각 나라의 엽서들. 배낭에 모인 소중한 것들을 보며 미소 짓는다. 별 탈 없이 흐른 하루에 감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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