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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26. 2019

바르셀로나를 떠나며

별빛 아래 바르셀로네타, 그리고 체리 여덟 개.

눈 뜨자마자 부엌에 차려진 아침 먹기. 닭죽과 모짜렐라 토마토 샐러드. 어떤 감탄사로도 표현될 수 없는 식사였다. 한식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하루. 씻지도 않은 채 숙소를 나선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소연언니를 배웅하기 위해서. 세 여자는 진한 포옹 후 작별한다. “한국 가서 또 만나. 잘 가 언니!”






빨랫감을 품에 안고 세탁소로 향한다. 질끈 묶은 머리와 로션도 바르지 않은 얼굴로. 누가 보면 바르셀로나 주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민박집주인 언니는 동네 지리를 잘 알지만, 목적지로 곧장 가는 법이 없었다. 첫 번째 쉼터는 크로와상이 맛있는 베이커리. 두 번째 쉼터는 전시관. 그녀는 작가에 대해 설명한다. “이 작가가 디디에 로렌조인데, 나는 이 작품이 정말 좋아.” 나는 언니의 말을 경청하면서 크로와상을 먹는다. “언니 근데 이거 무슨 크림이라고요? 진짜 맛있네.” 한숨과 함께 돌아오는 대답. “아니, 대화 수준이 이렇게 안 맞아.”






거리를 걸을 땐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 해가 쨍쨍한 날도 예외는 아니다. 벌써 두 번째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은 머리 위를 촉촉하게 적신다. 고개를 들자 테라스에 놓인 화단이 보였다. 식물들이 먹는 물이 땅으로 떨어지는 것 같다. 그녀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세탁소가 아닌 신발 가게. “여기 신발이 진짜 괜찮아. 너한테 어울리는 걸로 골라줄까?” 계획에도 없던 여름 신발을 장만한다. 그런 뒤에는 유명한 케밥 집에서 점심을 먹고 시장에 들른다. 체리와 복숭아를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오늘은 더위를 핑계로 시에스타-라틴 아메리카 등지에서 이른 오후에 자는 낮잠- 를 즐겨야겠다. 낮잠과 휴식은 여행에 꼭 필요한 일부이니.






침대에서 일어난 오후, 소연언니에게 받은 초콜릿을 꺼내 먹는다. 그녀는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배움에 대해 이야기했고, 내 여행의 남은 여정을 축복해줬다. 내가 동경하던 어떤 것을 전해 듣고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일,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 그리고 많은 것을 마음에 담는 일을 좋아한다. 홀로 남겨진 저녁, 시장을 지나 광장에 앉았다. 우연히 만난 여행자와 담소를 나눈다. 그녀는 엄마와 다툰 후 무작정 숙소에서 나왔다고 했다. “저는 엄마랑 함께 여행하는 딸들이 제일 부럽던데요? 얼른 돌아가서 맛있는 저녁 먹어요.”






밤이 깊었지만 바르셀로네타 해변이 보고 싶었다. 고민 끝에 자리에서 일어나 걸었다.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끈적한 바람과 바다 내음에 눈이 번쩍 뜨였다. 해변에 오면 알 수 없는 평안을 얻는다. 가방에 챙겨 온 체리를 입에 털어 넣고 파도 소리를 즐긴다. 고요를 누리던 중, 낯선 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Are you alone?” 남자 친구와 함께 왔다고 거짓말을 하자, 아쉬운 표정으로 자기소개를 이어가는 이탈리아 남자. 체리를 몇 개 쥐여주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의 기록. 별빛 아래 바르셀로네타, 그리고 체리 여덟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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