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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n 26. 2019

어쩌다 보니 포르투갈

마지막 나라, 남은 필름을 아낌없이 써버린다.

유럽 여행을 계획하던 어느 봄, 나는 스페인에서 2주를 보내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인생에는 늘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스위스에서 열흘을 머물렀고, 많은 이들의 유혹에 포르투행 티켓을 예매하고 말았다. 그렇다. 나는 귀가 얇다. 그토록 동경했던 스페인에 미련을 버리고 공항으로 향하는 길. 배낭을 멘 남자와 눈인사를 나눈다. 그는 내게 공항에 가냐고 묻는다. 내 등에 짊어진 짐을 보고 여행자라는 사실을 알아챈 거겠지. 그러더니 몇 번 터미널에 가냐고 묻는다. 그 순간 숨이 턱 막힌다. 터미널이 두 개라는 걸 이제야 알았다니. 재빨리 탑승권을 확인한다. Terminal 1, 하마터면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무사히 탑승을 마친 아침. 피로를 덜기 위해 잠을 청한다. 눈을 감자마자 깊은 잠에 빠진다. 얼마쯤 흘렀을까. 비행기의 작은 소음을 듣고 눈을 뜬다. 허기를 느끼고 쇼핑백 안에 든 과일을 꺼낸다. 씻지도 않은 복숭아를 입에 넣고 씹는다. 포르투에 가까워진 하늘 위, 옆 좌석에 탄 가족들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입을 맞추고, 그 모습을 본 아빠는 환하게 미소 짓는다. 고요하게 울려 퍼지는 아이의 재잘거림. 세 사람은 행복한 웃음을 흘린다. 그들의 단란한 장면 때문일까, 아니면 집에 돌아갈 때가 된 걸까. 엄마의 김치찌개가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작은 도시들, 손에 잡힐 듯한 구름이 여행의 끝을 실감하게 한다. 비행을 마치고 포르투 땅을 밟는다. 버스와 기차에 익숙해지면서 국경을 넘는 일에 무뎌졌었나 보다. 어쩐지 여행이 다시 시작되는 기분. 지하철에 몸을 싣고 숙소 위치를 찾는다. 근처에 있는 맛집 검색도 빼먹지 않고. 아, 드디어 마지막 나라라니. 아무래도 오늘 밤엔 소소한 기념 파티를 열어야겠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1층 침대를 배정받는다. 계단을 오르내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근처 레스토랑에 들어가 고기와 토마토가 함께 나오는 음식을 주문한다. 숙소 스태프와 가게 이모,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할아버지. 모두의 친절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금세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진다. 다채로운 건물에 흥미를 느끼며 사진을 찍는다. 그런 뒤에는 낯선 골목길로 걸음을 옮긴다. 고양이의 단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샛길로 빠지기도 하고. 그렇게 언덕을 올라 도착한 포르투 성당. 계단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연인들의 모습에 여유가 생긴다.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희미해질 때쯤 종소리가 울린다.







남은 필름을 아낌없이 써버린다. 루이스 브릿지가 보이는 강가 벤치,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연주는 멋지다. 다리 위를 거닐며 고요를 즐긴다. 어쩌면 감탄사 보다 더 큰 감탄은 침묵일 지도. 그토록 기대했던 스페인을 떠나 왔으나 후회는 없었다. 포르투는 행복을 안겨주는 도시였으니. 긴 다리를 지나자 힐 가든에 도착한다. 잔디밭에 누워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과 다정한 모습의 가족들. 눈 앞의 장면에 목이 멘다. 한국에 돌아가면 포르투가 그리워지겠지. 찬란하게 빛나는 도루 강과 멋진 이 도시의 야경이. 하지만 당장이라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매 끼니마다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도, 가방에 든 유로가 사라질까 전전긍긍하는 것도 그만두고 싶었고.








때마침 걸려오는 전화에 마음을 진정시킨다. 당신의 안부를 듣고 포르투의 아름다움을 전한다. “여기 야경은 말로 설명이 안 돼. 그러니까 다음엔 꼭 같이 오자.” 그는 어서 한국에 오라고 보챘고, 나는 아주 많이 보고 싶다는 말로 통화를 마무리 지었다. 다시 찾아온 고독의 밤. 맛없는 저녁을 먹고 몸을 일으킨다.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쓴다. 여행의 끝무렵, 사랑스러운 도시를 만난다. 모든 순간이 감사하고 소중했지만, 더 중요한 건 휴식이었다. 그러니 이만 잠자리에 들어야지!


오늘도 이상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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