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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07. 2019

해질 무렵 어느 바다의 풍경

파라솔 아래 연인의 뒷모습은 마음의 파도를 일게 한다.

오전 여덟 시,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일정을 모른 체하고 모두 침대에 누워 여유를 부린다. 정체 모를 공사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리지만, 어쩐지 평화롭다. “우리 오늘은 뭐 먹지?” 눈을 뜬 세 여자는 행복한 고민을 시작한다. 순두부 젤라토, 시장 닭강정, 꼬막비빔밥이 차례대로 순위에 오른다. 이때 환호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은 위염 환자인 나. 아, 이 슬픈 마음은 바다로 달래야지.






사천 해변.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을 차로 달린다. 뚜벅이가 아닌 여행은 낯설기만 하다. 바다가 눈 앞에 있지만 마음은 솔숲에 가 있다. 소나무가 우거진 곳에 캠핑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솔방울과 새소리, 그 너머로 파란빛이 있는 곳. 오랜 시간이 흐르고 숲 산책을 떠나게 된다면, 사랑하는 이들과 텐트에 누워 다정한 미소를 짓고 음악을 듣겠지? 내가 꿈꾸는 아늑하고 고요한 삶을 그리며 나무 옆에 선다.




가장 뜨거운 시간에 선교장을 찾는다. 연꽃으로 뒤덮인 연못 너머로 보이는 정자. “우와. 여름에 저 마루에 앉아서 수박 먹으면 진짜 좋겠지?” 청량한 초록잎은 한옥을 더 환하게 만든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천천히 누리며 한낮을 보낸다. 걸음을 멈춘 곳은 능소화나무 앞. 엄마 입에서 나온 꽃 이름은 내 여행의 즐거움이 된다. 벌 떼가 가득한 걸 보니, 꽃이 달콤한가 보다. 오래된 것들은 마음을 느리게 한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구경 중 더위에 지친 우리는 말한다.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역시 공복 상태가 오래되면 위험한 법.







오후 열 두시, 초당동에서 점심을 먹고 시장에 들른다. 감자떡을  품에 안고 식혜를 마신다. 바구니에 담긴 체리와 자두가 시선을 끌지만 가방에 있는 복숭아를 생각하며 참기로 한다. 누군가의 정성은 골목 구석구석 새겨져 있다. 간식 구경을 마친 우리는 카페 거리로 향한다. 바람이 몸에 닿는 야외 테라스. 그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비밀이나 잊고 싶은 일들, 그리고 언젠가 반짝- 하고 빛났던 엄청난 순간을 바다로 흘려보낸다. 먼발치에서 넘실대는 파도를 느끼면서. 긴 수다 끝에 몸을 일으킨다. “이제 바다로 가 볼까?”

몇 개의 해변을 지나 도착한 곳. 모래사장 위에 돗자리와 가방을 올려두고 물가에 몸을 맡긴다. 투명한 바닷속 세상을 궁금해하면서. 안전 요원의 퇴근 시간을 미처 고려하지 못한 탓에 계획이 엉망이 되었으나 파도 소리로 행복을 되찾는다. 파라솔 아래 연인의 뒷모습은 마음의 파도를 일게 한다. 그 물결의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그리움이 되기도 하고. 멀리 있는 당신이 그리운 시간, 우리도 머지않아 소중한 이야기를 안고 바다에 함께 나올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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