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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07. 2019

은하수 아래 새벽을 담다

구름이 걷히는 순간을 기다리거나 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오후 여덟 시 반, 만하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드디어 모든 시험을 마쳤다는 그의 말에 박수를 보낸다. 고단한 여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얼마나 달콤할까. 긴장이 풀리면서 피로와 나른함이 쏟아지겠지만. 기차 여행을 마친 후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휴식을 취하게 되겠지? 우리는 여전히 독일에서 보낸 한때를 운운하며 기억의 조각을 맞춘다. “나는 강원도에 있지만 함부르크행 열차에 탈 오빠가 얼마나 부러운지 몰라.” 그러니 모든 걸 마친 그대는 마음껏 자유를 누리시길.

늦은 저녁을 먹고 나른해진 여행자들은 침대에 나란히 앉는다. “안반데기가 공사 중이라는 말도 있는데, 어? 1분 전 게시글이다. 음... 뭐라고? 아 진짜, 장난하나. 닉네임이 1분 전이야.” 한 명은 별이 보이는 지점을, 한 명은 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모드를 검색한다. 분명 열 한시 반에 출발하자고 했던 이들은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움직일 생각을 안 한다. 라흐마니노프 콘체르토를 들으며 먼 훗날의 일들을 상상한다. 그 생각의 부분은 사랑이거나 삶의 방향이거나.




그렇게 열 두시가 넘어서야 숙소를 나선 우리. 피 끓는 청춘들은 별빛에 이끌려 안반데기로 향한다. 컴컴하고 구불거리는 산길을 따라 달리는 밤. 사슴이나 고라니 같은 야생 동물을 마주칠 것만 같은 도로다. 도시에 사는 친구들은 시골의 밤이 신기한 듯 감탄사를 연신 내뱉지만, 이보다 더 깊은 산속에 사는 나는 그들의 모습이 재밌을 뿐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밤 산책을 시작한다. 무모한 두 여자는 슬리퍼 차림으로 덜덜 떨며 언덕을 오르고, 가장 철저하게 준비한 민지는 찬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다. 그렇게 숨차게 걸음을 옮기던 중, 누군가 황홀에 찬 감탄사를 내뱉는다. “와아, 여기 진짜 별이 쏟아져!” 고개를 들자 밤하늘에 수놓은 엄청난 별빛이 두 눈에 담긴다. 어떤 강렬한 힘에 이끌려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한참 후, 모두 뒷목을 잡고 앓는 소리를 한다. “이러다 목 빠지겠어.” 하지만 고통을 감수할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광경이다.

별 사진에 적합한 카메라 모드가 적힌 글을 숙지한다. 셔터스피드와 조리개 값을 설정하고 삼각대를 세운다. 그런 뒤에는 풍력발전기나 나무를 피사체 삼아 셔터를 누른다. 친구들은 핸드폰 불빛을 비춰주며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실패. 별을 담는 건 이렇게나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긴, 오로지 별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사람도 있다는데. 내 준비는 너무 빈틈이 많고 허술했지. 이 경험은 훗날 더 큰 작품을 남기는 데 큰 힘이 되리라.



몇 번의 실패에 별 사진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로 한다. 하지만 일말의 미련은 남겨두었던 우리. 주차장으로 걷던 중,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화면에 찍힌 반짝이는 것들에 소리친다. 물론 수많은 별들 중 극히 일부분이지만, 모두의 간절함을 담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새벽 두 시, 돗자리 침대를 만든다. 적당한 자리에 누워 탄성을 내지른다. “아! 진작 누울 걸.” 담요로 추위를 달래고 꿈같은 시간을 이어간다. 구름이 걷히는 순간을 기다리거나 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두 시 반,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이겠지. 차에 들어가 언 몸을 녹인다. 그렇게 아쉬움을 안고 이동하던 길, 끼익 소리를 내며 차가 급하게 멈춘다. 하마터면 가드레일을 박을 뻔한 우리. 조수석에 탄 가진이가 말한다. “나 지금 심장이, 심장이 민트 같이 쏴 해.” 그녀는 종종 이렇게 귀엽고 상큼한 문장을 내뱉는다. 나희경의 Um Amor.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르던 중, 신기한 광경을 맞닥뜨린다. “얘들아. 고라니야.” 눈 앞에서 낯선 동물을 본 세 여자의 탄성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마리를 만난다. 그렇게 네 마리의 고라니 행진이 끝난 새벽, 어두운 도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간다. 안녕, 아름다운 평창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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