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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07. 2019

숲에서 보낸 시간

양이 있고 들판이 있었다. 우리는 언덕을 오르며 바람을 느꼈다.

평창에서 맞는 아침. 숲으로 뒤덮인 초록빛 여름이 하루를 깨운다. 눈부시던 새벽의 별빛은 우리에게 웃음을 안겨준다. 이를 테면 슬리퍼 차림으로 언덕을 넘었던 것, 패딩을 입고도 덜덜 떨며 담요를 두른 밤, 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 간절한 마음이나 떨림, 도로에 나온 고라니의 행진 같은 것들. 할아버지의 따뜻한 미소와 창밖의 푸른 들판이 아쉬움을 남긴다. 아마도 우리는 다시 이곳을 찾겠지. 그 이유가 황홀했던 새벽이든, 별빛 아래 긴 수다든.

천도복숭아를 나눠 먹으며 행복을 온몸으로 느낀다. 하지만 어쩐지 아쉬움이 남는 곳. 트렁크에 짐을 싣고 문을 닫는데, 수호견을 발견한다. 외부인의 침입에도 꼬리를 흔들며 애교 부리는 걸 보니 집 지키는 일엔 소질이 없어 보인다. 울타리를 넘어 마당으로 나오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 배고픔도 잊었던 시간을 뒤로하고 인사한다. 집주인이 아닌 댕댕이에게.


“안녕, 다음에 또 올게!”


평창에 온 건 이번이 세 번째였다. 이번에 우리가 찾은 곳은 삼양목장 보다 더 규모가 작은 대관령 양떼목장. 어쩌다 보니 조금 헤맸지만, 어쨌든 양이 있고 들판이 있었다. 고지대에 올라오자마자 안개와 구름이 곳곳에 퍼졌다. 덕분에 시원한 초원을 거닐게 된다. 가진이는 새하얀 옷을 입은 나에게 말한다. “양이라서 양처럼 입고 왔어?” 4월에 태어난 내 별자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응. 친구들 보러 온 거야. 메에에에-”


언덕을 오르다 나무 울타리 앞에 걸음을 멈춘다. 양 털이 얼마나 따뜻한지 만져보기도 하고 산책을 나온 어느 가족들을 보며 다정한 시선을 던지기도 한다. 유모차를 끌고 언덕을 오르는 아빠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 나의 부모님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너희 어렸을 때는 강원도를 내 집 드나들 듯 갔어.” 어쩌면 그 영향으로 강원도와 사랑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방학이 되면 늘 긴 버스 여행을 즐기곤 했으니. 엄마 아빠의 젊은 시절을 상상한다. 작은 아이였던 나를 데리고 바다나 숲을 찾아 나섰을 지난날들을. 다 알 순 없어도, 그 행복의 순간은 내 일부가 되었으리라.

몸 상태가 좋진 않았으나 긴 산책로를 택한다. 산뜻하고 시원한 평창의 바람이 금세 그리워질 것 같았기 때문. 어쩌면 여름이 지나기 전에 다시 이곳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자작나무 길을 지나 내리막길을 걷는다. 그리고 목장 입구에서 걸음을 멈춘다. 양 인형이 아닌 감자떡을 사기 위해. 가진이는 살며시 물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이 뭐냐고. “감자떡.” 세 명 모두 입을 모아 대답했다. “우리, 아무래도 다시 와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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