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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24. 2019

바다 영화관과 떡볶이

부산에서 우리가 보낸 시간

오후 12시 1분. 무궁화는 느릿느릿 행선지로 향하지만, 열차카페의 아늑함과 빛바랜 좌석이 여행의 설렘을 더해준다. 편의점에서 산 유부초밥과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음악을 듣는다. 몇 번을 잠에서 깨고 보니 부산이었다.






41번 버스에서 내린 곳은 광안리 해수욕장. 끝도 없는 골목을 헤맨다. 자기주장이 강한 페인트 색깔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고, 걸음을 멈추기도 하면서. 아마도 우리의 미소는, 골목 끝에서 희미하게 일렁이는 무언가로부터 시작되었으리라. 가장 먼저 맞닥뜨린 광경은 해변에 내린 골든아워 속 두 사람. 바다 영화관이 있다면 상영하는 작품의 주인공은 저들이겠지. 지는 해가 물결에 걸려 반짝이는 오후,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쌓인 피로가 파도에 닿아 사라진다. 고요한 소란과 함께.


일찍이 모습을 감추는 해는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고, 그 위로 어떤 비행이 시작된다. 곧 공항에 착륙할 사람들의 귀가이거나, 낯선 땅에서 한국을 동경한 이들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는 중이거나. 다시 바다의 장면으로 시선을 던진다. 서로의 손을 잡고 바닷길을 거니는 연인들과 아빠 뒤를 졸졸 쫓는 딸, 같은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풋풋한 학생들. 이렇듯 일몰의 순간은 늘 고요하다. 고요를 깨는 게 있다면, 그건 누군가의 허기일 것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저녁을 먹기로 한다. 바닷가에선 역시 컵라면. 드문드문 터지는 폭죽 소리 아래 광안리의 밤이 저물었다.






점심을 먹고 송도행 버스에 오른다. 동백이 떨어진 자리를 지나고 어떤 나무의 열매를 궁금해하며 스카이워크 닿는다. 다리 위로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반대편에는 눈 소식으로 떠들썩 한데, 송도는 아직 가을을 보낼 생각이 없는 걸까. 노래가 듣고 싶다고 말하자, 한동근의 기념일이 흘렀다. 최근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무한 재생된 곡이다. 미소를 머금고 걸었다. 거북섬을 지나 365m를 완주한 우리. 산책을 마친 후에는 자연스럽게 음식을 찾아 나선다.


남포동 부평 깡통 시장. 작년 여름에 먹었던 떡볶이를 그리며 길을 찾기 시작했다. 물론 네이버에 나온 위치 번호로. 과일 가게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도착한 가게 앞에는 긴 줄이 늘어져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떡볶이 두 개를 받는다. 시장 밖으로 나가 긴 의자에 앉는다. 이제 행복을 입에 넣을 시간. 당신이 떡볶이를 좋아해서 얼마나 다행인지! 우리 다음에 또 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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