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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24. 2019

시작하는 연인들을 위해

그거 아세요? 사랑의 기준은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

소파에 가만히 앉아 지난날을 떠올린다. 우리는 왜 그토록 열을 올렸는가. 냉전의 순간들을 차근차근 정리하자 숨어 있던 감정들이 쏟아져 나온다. 아마 각각 다른 기준을 내세웠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상적인 틀 안에서 당신을 바꾸려 들었다. 개인의 공간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게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지만,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는 나는 쉽게 울컥하고 토라지기 일쑤였다. 해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당신과 내가 세운 사랑의 정의는 같을 수 없고, 우리의 만남에 교집합만 존재할 수는 없다는 것. 지금껏 그를 다 안다고 믿었으나 우리가 보낸 시간은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채플실 야경은 지친 우리에게 고요를 선물한다. 드디어 평화에 기울었구나.





연애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의 일이다. 그는 늘 그래 온 것처럼 나를 학교로 데려다준다. 연습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인사를 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에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당신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점심에 햄 먹었어? 머리에서 햄 냄새나는데?”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 점심에 카레 먹었고 햄은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아마 얼마 남지 않은 입대에 겁이 났던 거겠지. 정확히 말하면, 내 두려움의 대상은 우리가 마주하게 될 어떤 간극이었을 테다. 근데 저 남자는 이 와중에 햄 타령을 하고 있다니.


연습을 마치고 학교를 나선다. 건물을 벗어나기 무섭게 눈이 내렸다. 야경을 보려고 했던 우리는 굵은 눈발에 목적지를 변경하고 만다. 가까이에 있는 치킨집. 세트 메뉴를 시키자 치킨과 주먹밥, 떡볶이가 식탁을 가득 채웠다. 치킨은 저녁이 될 수 없다고 외친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포크를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작됐다. 우리가 학교에서 함께 보낸 4년의 조각과 그 사이에 오간 수많은 감정, 그리고 지금의 마음 같은 것들. 나는 자주 얼굴을 붉히거나 말을 더듬었고 그는 웃었다.


여러 장면을 회상하다 보니 밤이 깊었다. 거리에 쌓인 하얀 눈과 그 옆으로 핀 눈꽃, 불 켜진 가로등 아래 양보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그렇게 긴 하루의 막을 내린다. 우리의 시작을 마음에 담으며. 기억하자, 양보와 존중. 당신과 내가 함께할 날들에 필요한 두 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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