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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25. 2019

1년 8개월의 대장정

입대를 준비하며, 우리가 보낸 크리스마스와 겨울

오전 열 한시, 크리스마스 예배가 시작된다. 평소에 잘하지 않는 시계와 팔찌가 손목에서 은은한 빛을 낸다. 옆에 앉은 남자는 할렐루야를 열심히 부르더니 잠에 빠지고 만다. 축도가 끝나자마자 눈을 번쩍 뜨는 당신. 오후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산책과 점심 식사. “난 너무 배고파서 산책 못 해. 밥 먹자.” 집으로 가는 길, 걸음을 멈추고 만다. 금빛으로 물든 갈대밭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 결국 카메라 전원을 켜고 크리스마스의 한낮을 담는다.






한 해의 끝무렵 다섯 명의 연주자가 시골 마을에 모였어요.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 작은 카페에서 연주를 했답니다.

우리를 집으로 이끈 건 엄청난 허기였다. 물을 끓이는 그에게 묻는다. “내가 뭐 도와줄까?” 요리를 시작한 남자는 고개를 젓는다.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하하하. 얼마 후 떡국과 라면이 식탁에 차려진다. 뜨거운 국물로 겨울을 달래고 식사를 마친다. 남은 일정은 머리를 깎는 일. 나는 바리깡을 들었고 빈은 울상을 짓는다. 문득 지난날이 스친다. 서로가 보고 싶은 밤이면 몇 번의 밀당 끝에 영화를 본다던가, 강변을 따라 산책을 했던 연애 초기. 한동안 이 기억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워야 할 테니.


다음날 아침. 집 앞 편의점에서 예비 훈련병을 만난다. 비요뜨를 먹으며 소소한 아침을 보내고, 우리는 헤어질 준비를 했다. 4년을 함께 한 그가 입대를 한다니. 남자 친구를 떠나보낸다는 슬픔보다 나의 작은 부분이 사라지는 것 같아 목이 메었다. 방향을 잃은 마음이 한동안 길을 헤맬까 두렵기도 했고. “잘 갔다 와.” 그렇게 그는 함안으로 떠났다.


꽤 무료하고 공허한 시간이 이어졌다. 점심에는 김치찌개를 먹었고 저녁에는 세탁기를 돌렸다. 분주하게 움직이다 어둠이 내릴 때쯤 펜을 든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어. 니가 훈련이나 행군이 잘 맞아서 새로운 취미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예를 들면 매일 산책을 가자던가, 설산 등반을 제안한다던가. 혹시 헛된 희망이야? 떨어진 지 고작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벌써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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