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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27. 2019

봄이 주는 기억

시작하는 서로의 길을, 또 당신과 나의 다른 시간을 응원하며.

대전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좌석 번호를 확인한다. 더운 바람이 엄습했으나 쏟아지는 피로에 서둘러 자리에 앉는다. 긴 기다림 끝에 당신을 만나러 가는 길,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한데 섞인다. 창가 옆으로 피어나는 설렘과 애틋한 마음, 엷은 미소들이 나를 더 사랑스럽게 만든다. 자연광에 수많은 것들이 반짝이는 오후였다. 한 계절을 보내고 그를 만났다. 우리는 가장 평범한 일들에 쉽게 감동하고 울컥했다. 함께 보기로 한 벚꽃은 이미 져버린 뒤였지만 가장 아름다운 봄은 곁에 있었다.






오후 1시, 히아신스를 찾으려고 꽃집에 전화를 다섯 통이나 걸었다는 당신의 말에 웃었다. 그 대신 예쁜 프리지아를 들고 나타난 빈. 우리는 녹차가루가 뿌려진 티라미수 케이크에 초를 꽂았다. 켜진 촛불 앞에서 망설이다 눈을 감았다. ‘앞으로도 행복하게 해 주세요.’


단골 가게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찾는다. “남자 친구한테 받은 거야?” 이모의 물음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프리지아 꽃말 알아?” 커피를 주문했는데 꽃말이 덤으로 따라왔다. -당신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정작 꽃다발을 선물한 남자는 그런 뜻이었냐며 멋쩍게 웃었지만, 나는 괜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의 미조살이와 내 휴학 생활이 안온하게 펼쳐질 것만 같아서.


한낮의 거리, 초록빛이 하늘을 가득 채우는 나무 아래 감탄사를 연발한다. 107일간 떨어져 있었던 우리에게 소중하지 않은 게 존재하긴 했을까? 며칠 뒤에 있을 작별의 순간만 빼고. 공원에 핀 꽃사과 나무가 은은한 빛을 퍼뜨린다. 모든 게 가지런했다. 옷 위에 내려앉은 그림자도, 머리칼을 흔드는 바람도. 시장 골목으로 가는 길, 요양원이 장례식장으로 변했다는 배너를 발견한다. 그는 말한다.


“우린 나중에 요양원 가지 말자.”
“노후 준비를 벌써 해..? 꽃으로 치면 우리는 아직 막 자라고 있는 중인데. 으음, 피어나는 잎 정도?”
“아니야, 인생의 1/4이 지났어.”
“몰라. 그냥 난 파릇파릇한 새싹이라고 생각할래.”

늦은 오후에는 교보문고로 향한다. 늘어진 사람들 속에 섞여 책을 고르는 시간. 서점 안의 고요와 종이 냄새를 사랑한다. 가끔 책장의 맨 위칸에 반짝이는 제목에 끌려 눈썹을 찡그리긴 하지만. 오늘은 한숨 쉴 필요가 없다. 당신이라는 사다리가 곁에 있기 때문. 시집을 안고 미소 짓는다. 그리고 속삭인다. “포장마차 떡볶이 먹고 싶어.” 그가 보내는 긍정의 신호에 달콤한 저녁 시간이 흐른다. 어두워진 저녁, 버스를 몇 대나 보내고 산책을 이어간다. 여기저기 만개한 조팝나무 옆에서 서로의 잔향을 잠긴다. 그의 어깨에 기댄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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