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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19. 2019

밤에 취한 말들

우리는 지금 어떻게 피어나고 있는 걸까.

월요일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 버스에서 만난 그와 눈치게임을 시작했다. 어딜 갈 거냐고 묻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빈. 하루를 통째로 반납할 생각에 주말 내내 일개미 모드를 유지했건만. 어쩜 저렇게 태평할 수가. 일단 카페에 들러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뒤, 바깥공기를 확인한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해서 우리는 길가에 널브러진 마지막 가을을 느끼기로 했다. 바스락 소리가 나는 낙엽길을 걸으면서.







얼마 후, 갈마역 산책로 옆으로 학생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몇 그루의 단풍나무 사이로 굴러다니는 축구공을 보니 미소가 번졌다. 벤치에 앉아 축구 경기를 관람한다. 어쩐지 호기심이 생겨서. 멀리 있는 막내 동생이 그리운 이유도 한몫했고. 몇 명인지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축구팀.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며 시합에 임하는지, 서로에게 어떤 응원을 보내고 있는지, 얼마나 열심히 가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이 떠올랐다. <브릿 마리 여기 있다>, 축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된 보르그와 아이들의 이야기. 보르그 축구팀은 경기가 이루어지는 동안 함께하는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참혹한 결과에도 피자를 먹으며 활짝 웃었다.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에 몇 번이나 감동하고 울컥했다. 벤치와 가까운 골대에 공이 들어가는 순간,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던진다. 그리고 우리는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다시 어딘가로 향한다.

저녁을 먹고 익숙한 길을 따라 걸었다. 눈부신 달이 밤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꽤 쌀쌀한 밤공기에 어깨와 귀의 거리가 가까워진다. 그는 자연스럽게 얼어붙은 내 두 손을 녹여준다. 긴 다리를 건너고 지난 4년의 조각을 이어 붙이고 모아 담는 동안, 수많은 감정과 빚어지지 않은 마음이, 또 서툰 눈빛이 오간다. 우리는 지금 어떻게 피어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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