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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29. 2019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할 거야

찰나의 감정과 파도 소리, 호수와 겨울 바다를.

당신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휴가 계획을 세운다.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다정하게 묻는다.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수화기 너머로 여러 도시를 보낸다. 부산과 제주, 강원도를 놓고 고민하자 못 말린다는 듯 웃는 빈.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또 속초를 택한다. 이번 생은 강원도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인 걸까?

먼발치에서 걸어오는 짧은 머리의 군인.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잡는다. 도로 교통 사정으로 놓칠 뻔한 버스에 간신히 탑승한다. 짐칸에 배낭을 싣고 안도한다. 이 순간, 당신과 함께라는 사실이 어찌나 감사하던지. 강가 위로 겨울 해가 내려앉고 창밖으로 지나치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만 느껴지는 오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을 시작한다. 예를 들면, 그리웠던 당신의 배 위에 팔을 올려두고 나른한 잠에 드는 것?





작은 주전자에 물이 끓는 동안 나갈 준비를 마친다. 잔에 담긴 그린 필드는 우아한 아침을 선물한다. 그렇게 느긋한 여유를 즐기던 중, 어딘가에서 불어오는 라면 냄새가 차의 향을 이긴다. 아아, ‘아침에는 가벼운 음식’이라는 신념을 가진 나지만, 예외란 존재하기 마련. 가방에 넣어둔 진라면을 꺼낸다. 화려한 아침 식탁이 완성된다. 바닷가에서 먹는 라면은 늘 옳다.


겉옷을 걸치지 않아도 될 만큼 따스한 겨울날, 예쁜 꼬까옷을 입고 바다를 신기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미소 짓는 당신과 봉포리에서 낮시간을 보낸다. 겨울 바다에 발을 담그고 소리 지르는 사람은 아마 우리 둘 뿐이었던 것 같다.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에는 도시의 경계를 넘는 일도 포함된다. 해서 나는 언제나 속초와 가장 가까운 봉포 해변에 자리를 잡는다. 또, 이 도시가 특히 마음을 끄는 것들이 있다. 다른 바다 마을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 작고 예쁜 섬이 가까이에 있다는 것, 투명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느긋한 오후,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질문을 하는 편이고, 그는 뜬금없는 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는 편이다. 곯아떨어져 자던 그가 살며시 눈을 뜨고는 이렇게 물었다. 자신과 함께 할 때, 어떤 순간이 가장 좋냐고. 해서 이렇게 답했다. “같이 웃을 때. 맛있는 거 먹을 때? 너는 언제가 제일 좋은데?” 그는 입을 열었다. “지금.” 사랑스러운 문장에 수줍게 웃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긴다. 부지런한 겨울 해는 잠들 준비를 시작한다. 금세 어둠이 내리고 깊은 밤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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