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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Jul 30. 2019

케이크보다 달콤한 것들

그건 아마도 크리스마스이브의 우리겠지.

늦은 저녁, 파티를 준비한다. 먼저 스투키를 예쁜 머그잔에 옮겨 담고 부엌을 정리한다. 그런 뒤에는 냉장고를 밀어 거실 공간을 확보한다. 밀려난 소파가 산사태를 만든다. 동생이 창가에 올려둔 화분이 바닥으로 쏟아지고 만 것. 청소는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결국 바닥을 다 닦은 후, 동생 방을 치운다. 그리고 3층, 전구를 달고 크리스마스트리 위치 정한다. 새벽 한 시 반쯤. 네 시간에 걸친 청소가 막을 내린다. 먼지와 무리한 전쟁을 벌인 탓일까, 침 삼키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진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감기를 예방하기로 한다. 물을 끓이고 유자청을 컵에 붓는다. 거실에서 일기를 쓰던 동생은 은은한 유자향에 이끌려 부엌 식탁에 앉는다. 결국 시시콜콜한 대화로 새벽을 지새운다.

우리는 나무 스피커에 핸드폰을 연결해 캐롤을 틀어놓고 손님들과 축배의 잔을 들 것이다. 또, 거실 선반에 쌓인 책은 낭만을 안겨줄 것이며 그 너머로 지는 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할 테다. 달콤한 웃음소리와 맛있는 음식들이 밤을 화려하게 장식하겠지. 이는 내가 상상하는 크리스마스이브 장면.




감기를 막는데 유자청은 역부족이었을까, 열이 펄펄 끓었다. 시체처럼 누워 있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병원으로 향한다.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와 다시 소파와 한 몸이 된다. 크리스마스이브는 끝이라고 울먹이며 잠에 든다. 그리고 빈을 만난 오후, 서서히 열이 내리기 시작한다. 신기하기도 하지, 아무 힘도 쓸 수 없었던 몸에 작은 기운이 느껴졌다. 거실 문이 열리고 또 한 명의 군인과 동생이 집으로 들어온다. 거실 가득 사람이다. 부엌에 모인 이들은 각자 맡은 음식을 만들고, 저녁 식탁을 넉넉하게 채운다.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질 때쯤, 아빠가 중국에서 사 온 홍차를 꺼낸다. 차의 향은 얼마 가지 않아 막걸리와 와인으로 변한다. 군인 두 명은 붉은빛이 도는 와인을 한 모금씩 마시더니 도저히 안 되겠다며 고개를 젓는다. 내 상상 속 장면은 현실이 된다. 알코올이 섞인 티타임이 끝난 후, 팔씨름 대결이 펼쳐진다. 아빠와 마주 본 남자들은 사력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그들의 붉은 뺨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긴다. 그렇게 밤의 긴 부분이 흐른다.


미조 주민이 남해행 버스에 오르면서 올해의 마지막 휴가가 막을 내렸다. 우리는 다시 익숙해진 수화기 너머로 사랑의 말을 전하거나 각자가 기억하는 겨울의 장면을 조각조각 모아 붙이게 될 테다. 당신이 떠나간 자리 가득 찬바람이 부는 밤, 매서운 한파에 그의 다정한 손길과 뜨거운 체온이 금세 그리워졌으나 이내 단념했다. 다음 만남까지 있을 얼마 간의 공백을 애틋하게 잘 채워나가는 수밖에. 내가 그리움을 달래는 방법 하나. 따로 또 같이 존재하는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서로의 하루를 불어넣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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