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Aug 01. 2019

그러니 우리, 남은 계절을 더 소중히 살아내요

당신과 내가 가장 애틋했던 날들은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우리는 가끔 사소한 말다툼을 벌인다. 음,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씩씩거리며 아니라고 말할 게 뻔하다. 그러니까 싸운 건 아니고 잠시 투닥거리는 정도? 대부분 하루도 안 돼서 끝나곤 하지만. “너는 내가 기억력 안 좋은 걸 감사하게 생각해. 내가 기억력이 좋았으면 니가 한 말을 전부 기억해서 말해줬을 거야. 어쨌든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한지 다 까먹었지만, 그냥 속상했다고.”


그렇게 단기 기억으로 살아가는 나는 기념일을 맞아 퍼즐 맞추기를 시도했다. 내 그림이 완성되는 판에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담겨 있다. 몇 개의 조각은 전부 다른 모양으로 찬란한 빛을 내고 있다. 어쩌면 그 작은 조각이 만들어지는 동안 오갔던 사랑의 말과 수많은 마음이 기억의 끈을 붙잡았을 지도.


봄이 왔다. 이 계절은 홀로 나설 겨울 산책이 끝났음을 알린다. 곧 은은한 향이 거리를 물들이고 햇살을 받은 초록이 무성해질 테다. 우리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멀리서 함께했던 수많은 낮과 밤을, 그 너머로 전했던 사랑의 온도를 기억하겠지. 보고 싶다는 말을 몇 번이고 삼키면서 하루의 빈틈을 채워나갔던, 전할 수 없는 마음을 아쉬워했던 그 시절을. 그러니 우리, 남은 봄과 여름을 더 소중히 살아내자. 어떤 단어나 문장,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던 시간이 희미해져도 당신과 내가 가장 애틋했던 날들은 영원하기를 바라면서.





그런 날이었다. 아무리 달콤한 토피넛 라테를 마셔도, 좀처럼 기분은 나아지지 않고, 사랑하는 당신과 있어도 계속 눈물이 나는. 우리는 복잡한 거리를 벗어나 어느 교회에 멈춰 섰다. 높은 소나무 아래, 고개를 들면 나뭇가지와 열매가 하늘에 걸려 선명하게 흔들리고 더 이상 마음을 해치는 소리는 없었다. 나는 말했다.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봐. 어떻게 살아가는 게 맞는 건지,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그만 울고 싶은데 자꾸 눈물이 나.”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차분한 음성으로 말하는 빈. “그게 당연한 거야, 울어도 괜찮아.”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길 만난 걸 평생 후회하지 않게 해 주겠다고, 그러니 곁에 있어달라고 말한다. 이렇게 다정한 당신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침잠해 있는 나를 고요한 정원으로 끌어올리는 그의 눈빛에 평화를 되찾는다. 깊은 밤, 소나무 옆에 남은 문장이 마음을 간지럽힌다. “나도 아직은 뭘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평생 재미있게 해 줄게.”

차곡차곡 쌓인 시간을 천천히 눈에 담자, 방 안 가득 평화가 깃든다. 3월이 지는 밤, 좋은 마음이 더 깊게 뿌리내리고, 두 사람의 나무는 조금 더 견고해진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는 중. 작은 정원에 볕이 들고 바람이 잘 통하기를, 잎이 무성해지기를 바라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