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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04. 2019

당신과 작은 우주를 만드는 방법

그 조각은 마라탕과 산책, 아크로 요가 같은 것들.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는 나는, 늘 영원을 꿈꾼다. 그리고 이렇게 믿는다. 이 세상 모든 낭만의 장면은 행복의 한 부분이며, 엄청난 가치가 있는 거라고.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설렘 없는 사랑이라는 게 존재할까요?” 그와 사랑에 빠졌던 순간을 떠올리며 천천히 입을 연다. “글쎄, 물론 처음 같은 설렘은 없지. 근데, 만나는 날이 다가오면 긴장되고 두근거리긴 해. 우리는 꽤 오래 애틋했거든.” 그 밤, 당신에게 걸려온 전화에 한낮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자, 흥분된 투로 답하는 빈. “뭐? 설렘이 없다고? 난 아직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하하하. 아무 소리도 안 나기만 해 봐라. 만나자마자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대야지.







금요일, 대학로 데이트

흐린 하늘 아래 더운 바람이 분다. 죄 없는 날씨를 탓하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한 달 만에 보는 당신 앞에서 울상을 짓고 싶진 않았지만, 정말이지 너무 속상한 날이었다. 소리는 건반 위로 다 흩어졌고 내가 준비한 음악은 어설픈 모양으로 변하고 말았다. 며칠 간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런 나를 보고 추리를 시작하는 빈. “이건 배고플 때 나오는 표정이 아닌데? 왜, 누구야. 말해봐.”

잠깐의 침묵 뒤로 슬픈 감정을 토로한다. 그는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타이르더니 이상한 처방을 내린다. “맛있는 거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피아노 앞에서 초라해진 내 모습에 화가 난 건데, 밥으로 해결하라니. 눈썹이 찡그려진다. 오후의 대학로, 계단에는 마라탕을 먹겠다고 모여든 이들이 줄지어 서있다. 우리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마음을 추스른다.

먹고 싶은 음식을 볼에 담은 후 안내받은 자리에 앉는다. 소소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음식이 나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탁 위로 평화가 내린다. 그 순간 깨닫는다. 때론 이상한 처방이 큰 효과가 있기도 하다는 것을. 맵고 뜨거운 국물을 목으로 넘기며 웃음을 되찾은 나에게 그가 말한다. “그래, 넌 그게 어울려. 웃으니까 얼마나 좋아.” 사랑한다고 작게 속삭이자, 낭만을 와장창 깨뜨리는 남자의 말. “응. 근데 여기 밥은 따로 시켜야 하나?” 우리가 오래 만나긴 했지. 하하(..)



월요일, 소소한 문장들

그가 미조로 돌아가는 날 아침, 함께 아크로 요가를 하기로 한다. 나를 등에 태우고 팔 굽혀 펴기를 스무 개는 하던 사람이 바들바들 떨며 균형 잡기에 실패한다. 이렇게 흔들리는 비행기는 처음 타 본다는 내 말에, 저가 항공이라 그렇다는 강 기장. 이제 내려달라고 소리치자, 아직 1시간은 남았다고 받아친다.


“아니, 얼른 내려주라고. 나 열기구 있어!”

“설마 낙하산을 말하는 건 아니지?”

“맞아.. 그거나 그거나.”

“비슷하지도 않았어. 영아, 어디 가서 그러면 안 돼.”
“얼른 밖으로 나가자. 새가 울고 있어.”
“노래하는 거야. Bird sonata 3악장. 그러고도 음대생이라고 할 수 있어?”
“응.. 그럼 저거 다 듣고 나가자.”
“우리 못 나가. 저거 세 시간짜리거든.”
“세 시간짜리 소나타도 있구나.”
“새는 가능해. 호흡이 길거든.”

- Je dis que rien ne m'epouvante
음악이 끝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죄 없는 이를 탓하는 여자와, 그들의 시간 위로 내려앉는 아름다운 선율. 건반 앞에서 마음을 추스른다. 벼랑 끝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붙잡는 그녀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뮤지컬의 한 대목이 머릿속을 맴돈다. ‘싸울 가치가 있으면 쟁취할 가치도 있는 법.’ 왜 우리는 이토록 힘겨운 싸움을 반복하면서 다시 전쟁터에 몸을 던지는가. 아마도 많은 이들이 함께하는 행복을 갈망하기 때문이리라. 나는 상상한다. 한 사람과 작은 우주를 만드는 일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랑의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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