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캐롤 Aug 03. 2019

여섯 개의 마음을 모았습니다

오후 두 시 반, 낮술과 함께 시작되는 긴 이야기.

동생의 귀국 생활이 끝나갈 무렵, 3개월 전 약속을 이룬다. 여섯 명의 청춘 중, 두 명은 휴가를 나온 군인, 한 명은 곧 호주로 떠날 워홀러. 그런 그들과 시간을 맞추는 건 쉽지 않았지만, 긴긴 대화 끝에 약속 장소가 정해진다. 어떻게든 서로를 보겠다는 의지가 한몫했을 테다.


타는 듯한 태양 아래, 세빛섬 표지판 너머로 여름을 담았던 기억이 스친다. 그로부터 4년쯤 흘렀을까, 이번엔 선선한 바람과 당신이 있다. 오늘은 배낭이 아닌 작은 가방을 메고 함께하는 순간을 온전히 누리기로 한다. 토요일 오후,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터널에서 나오자 동화 같은 장면이 펼쳐진다. 낭만에 취한 사람들과 공원의 싱그러운 빛깔이, 여름 냄새가 퍼지는 곳. 달콤한 마음이 작게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근처에서 떡볶이를 주문하고 치킨집에 전화를 건다. 10년도 더 된 원피스를 입은 동생, 그녀의 배낭을 대신 짊어지는 류준열(닮은꼴), 떡볶이와 누가 크래커를 든 빈과 나. 그리고 맥주를 사랑하는 지각생 둘. 오후 두 시 반, 한강 공원에 모여 돗자리를 깔고 낮술 피크닉을 시작한다.

고칼로리 음식을 마구 흡입한 후, 우리가 벌인 또 다른 일. 잔디밭 위의 요가 교실. 동생은 배낭 속 인도 바지를 꺼낸 뒤, 참가자를 모집한다. 참여 인원은 여섯 명. 그녀가 건넨 선택지에는 ‘예’라는 답만 있었으니. 모두 편한 옷을 입고 물구나무서기를 하거나 아크로 요가를 배운다. 키가 큰 이팝나무 아래 다리를 하늘로 뻗고, 얼굴이 새빨개진 채 호탕한 웃음을 흘리기도 하면서.


잔디밭에 널린 텐트를 보면서 다음 만남을 계획한다. “12월엔 다 같이 호주에서 모이는 거야. 6인용 캠핑카 빌려서 로드 트립 하자!” 추진력 좋은 여자 세 명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이성적인 세 남자는 그저 고개만 끄덕인다. 잘 취하지 않는 빈은 어쩐 일로 눈이 풀렸다. 그런 그와 소소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소를 나눈다.


한참을 먹고 마시고 웃던 중, 일몰의 순간을 마주한다. “꼭 아프리카의 노을을 보는 것 같아.” 나지막한 내 목소리에 누군가 돌을 던진다. “아프리카 안 가 봤잖아.” 그 말을 모른 척하고 해가 지는 곳을 등지고 선다. 저녁 여덟 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앞서 걷는 세 명의 뒷모습이 가로등 아래 남는다. 시선을 끄는 동생의 어깨. 이번엔 얼마나 새까맣게 몸을 태워올지, 호주에서 무슨 경험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궁금해진다. 다가올 앞날을 마음대로 상상하며 작게 기도한다. 그녀의 어깨에 짊어진 배낭 속에 아름답고 멋진 조각이 채워지기를, 늘 무사하고 건강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정원을 만든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