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무렵,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게 될 거야.
떡볶이를 먹고 치킨을 찾으러 가는 길, 들뜬 목소리로 행복을 알린다. 그는 배고픈데 왜 자랑하냐고 투덜거렸고, 나는 그 말을 잽싸게 받아친다. “너도 맨날 자랑하잖아.” 그러자 이렇게 대답하는 빈. “나는 너한테 보고 하는 거야. 보고 싶다고.” 생각지도 못한 로맨틱한 문장에 수줍게 웃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우리의 굿나잇 인사. 저녁 열 시를 알리며 사랑을 전한다. “오늘은 쏘 머취. 진짜 할 말은 생략했어. 괄호 안에.”
보고 싶었던 가족들을 만난 오후. 테이블을 가득 채운 큰아빠의 요리에 입이 떡 벌어진다. 요즘 푹 빠진 냉모밀을 마구 입에 넣고 샐러드를 잔뜩 올려 먹는다.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는 빈은 들뜬 표정으로 식사를 이어갔고, 언니와 큰아빠는 더 먹고 싶은 게 있냐고 몇 번을 물었다. 몇 년이 흘러도 여전히 따뜻한 사람들, 그 온기와 눈빛에 행복이 번진다.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후 피서지를 정한다.
공원을 지나 포도 향기가 짙은 터널 입구에 도착한다. 우리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신기한 기계 앞. 별자리를 누르면, 그와 어울리는 꽃과 와인, 그리고 탄생석을 알 수 있다. 4월의 탄생석은 다이아몬드. 얼마 전의 커플링 얘기가 떠올라 웃음이 터진다. 처녀자리에는 수레국화와 피노누아가, 양자리에는 데이지와 비오니에가 어울린다고 한다. 언젠가 별빛이 쏟아지는 곳에서 와인잔을 기울여야지.
와인 터널에서 나와 용두공원으로 가는 길. 청명한 하늘에 널리 퍼져있는 구름을 향해 소리친다. “자연은 정말 위대해. 오늘 날씨 진짜 좋다!” 눈 앞에서 마주한 숲을 보고 큰 행복을 얻는다. 시원한 동굴과 달콤한 포도향도 좋지만, 바람에 흔들리는 풀과 함께 자연의 일부가 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볕이 좋은 어느 오후, 리모컨을 든 빈에게 달려가 폭 안긴다. 예전의 나는 상상도 못 했을 광경. 누군가에게 업히거나 안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듯 사랑은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인다.
유월의 열 번째 휴가, 그는 책상 위에 선물을 잔뜩 쌓아 두거나 다정한 문장을 읊는 일로 행복을 안겨 준다. 하고 싶은 말이 다 생각나지 않을 때는 글을 쓴다. 우리의 간극을 단란하게 메운 시간에 대해. 이를 테면 짧은 기차 여행과 밤 산책, 그림 선물, 새벽의 취중진담 같은 것들. 연주가 끝나면 한껏 여유를 부려야지, 생각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며칠뿐이다. 하지만 이제 남은 휴가는 단 두 번. 이 기다림 끝에는 애틋함이 있고 초심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있다. 그가 다시 미조로 돌아간 월요일. 나는 긴 여운을 느릿느릿 더듬을 테다. 예를 들면 당신의 농담과 애교 섞인 웃음, 다정한 배려 같은 것들. 계절의 흐름에 기대어 달콤한 장면을 상상한다. 여름의 끝무렵, 우리는 삶의 많은 부분을 함께하게 될 테다. 그때가 되면 지난날이 그리워지겠지? 미조의 소음이, 먹고 기도하고 사랑했던, 그 시간에 충실했던 우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