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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08. 2019

한여름의 섬

서로의 마음을 건넌다는 것. 그 다리에는 무슨 감정이 오고 갈까.

새벽 두 시였나. 친구의 연락을 받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때 기댈 사람이 나타난 건 엄청난 기적이었다. 나는 슬픈 마음을 쏟아냈고 그녀는 그늘을 넓게 펼쳤다. 위로의 말에 파동이 약해진다. 창문 너머로 번지는 빗소리에 철없는 투정을 부린다. 하나님, 죄송하지만 비를 탓하겠어요. 시공간을 초월하는 유일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분명 맞는 말이다. 하지만 사랑을 지키는 데에는 수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의 마음을 건넌다는 것. 그 다리에는 무슨 감정이 오고 갈까. 아마도 이해와 양보가 공존해야 될 것이며 추락할 위기에 처한 당신을 붙잡을 힘도 필요할 테다. 우리는 몇 번이나 낡은 나무 위에서 휘청거렸으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당신과 나의 간극을 섬이라고 적었다. 우리 마음에 바다가 있고 산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지만 한여름의 섬은 가난했다. 가뭄이 잦거나 홍수가 일었다. 그러한 재난을 대비하지 못했던 나는 밤새 눈물을 쏟았다. 침대 옆에 걸린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야 할 정도로. 그리고 7월의 끝무렵, 우리는 비밀 정원에서 화해한다. 상상 속 열매는 복숭아로 정한다. 이 계절을 가장 달콤하게 기억하기 위해. 시든 나무에 잎이 자라길 바란다는 나의 말에 그는 말했다. 거름과 영양과 사랑을 주겠다고. 그러자 모든 재난은 눈 녹듯 사라지고 복숭아가 열린다. 넉넉해진 마을에 소소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니가 운전을 너무 못 해서 차가 바다에 빠진 거야. 내가 그 순간 창문을 열었어. 그리고 꿈에서 깼어. 근데 나는 니가 운전을 못 해도, 널 사랑할 수 있어. 너는?” 고민 끝에 대답한다. “나무에 열린 복숭아가 그 바다를 다 채울 수 있을 만큼.”

​물에 잠길 뻔했던 섬에 평화가 번진다. 이번엔 비밀 정원에 가져갈 작은 선물을 준비한다. 당신과 함께한 순간들을 잘 모아서 한데 이어 붙인다. 그리고 짧은 영상을 잘라 넣는다. 33초 만에 14개월이 흐르고, 그 뒤로 몇 계절이 스친다.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들, 또 서로의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어느 시점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우리가 함께한 수많은 장면을 어찌 단 2분 만에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사진 속 두 사람은 생생하게 기억할 테다. 빛바랜 필름을. 감고 또 감으며 지난 시간을 천천히 여행하리라. 기차의 소음이 사라지고 목적지에 닿는 날, 어쩌면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른다. 알지도 못 하는 미조의 바람이 그리워질 까 봐, 아니면 형용할 수 없는 황홀에 목이 메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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