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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10. 2019

실패한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새벽 언저리에 잠이 들거나 늦은 아침에 겨우 눈을 뜨는 요즘.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이 계속되는 탓이라고 우기며 게으름을 피우고 있다. 그러던 중에 나를 자극시킨 몇 개의 상황이 있었다. 도안동 끝에 있는 레슨과 차가 없으면 돌아다니기 힘든 도시들, 무면허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들. 뚜벅이 생활이 익숙했던 내게 운전이 필요한 시점이 올 줄이야. 여름과 일 사이에서 생겨난 수많은 감정에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길치라는 핑계로 오래 미뤄둔 면허를 따고 말리라고. 이틀 만에 학원을 등록하고 나의 확고한 의지를 널리 알렸다. 응원을 보내는 이들 가운데 동행이 생긴다.

- 나도 같이 다닐래!


수강료가 비싸다고 투정하는 내게 친구는 말한다. 평생 운전을 배우는 건데, 그 정도는 아까운 게 아니라고. 그녀의 말에 나의 텅 빈 통장이 용서된다. 인생은 먼저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운전 선배에게 조언을 듣고 눈을 반짝인다. 내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생각해야지. 무료했던 여름에 청춘의 열정이 소나기처럼 내린다. 아마 나는 이 순간을 꽤 오래 기억하게 될 테다. 면허증을 발급받고 운전대를 잡는 것. 일주일 전만 해도 상상 못 할 일이었으니. 운전의 ‘운’ 자도 모르는 내 앞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어서 좁은 새장을 벗어나 훨훨 날아다녀야지!





첫 번째 관문: 필기시험

이틀의 교육을 마치고 시험을 준비한다. 사람들은 말했다. 필기는 불합격할 수가 없다고. 시험장으로 가는 길에 공부를 해서 합격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 말에 편안한 마음으로 모의고사를 푼다. 하지만 결과는 불합격. 그것도 두 번이나 57점을 맞았다. 공부를 하지 않은 채 시험을 봤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해서 예상 문제를 훑어보고 모의고사에 재도전한다. 세 번째 점수는 73점. 하지만 워낙 기초 지식이 부족했던 나는 불안한 마음에 시험을 두 번이나 더 본다.

대망의 디데이. 편의점 앞에서 언니를 만나 버스장으로 향한다. 목적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1시간 반 정도. 긴 여정이 시작된다. 언니는 작은 목소리로 떨림을 전하고 나는 다섯 번의 성적을 공개한다. 시험을 핑계로 사둔 샌드위치를 꺼내 배를 채운다. 그렇게 얼마 후 산내에 닿는다. 초록으로 뒤덮인 들판과 꽃을 피운 여름 나무, 오래된 간판에 편안함을 느낀다.

시험장 입구, 길게 호흡한다. 신체검사를 받고 대기표를 받는 순간,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내 앞에 있는 대기 인원만 35명. 기다리는 동안 틀린 문제를 확인한다. 원서 접수를 마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기도한다. ‘주말에 반짝 외운 문제가 머릿속에 잘 남아있게 해 주세요.’ 하지만 시작과 동시에 난관에 부딪친다. 고민 끝에 다음 문제로 넘어간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한 자세로 시험에 임한다. 아는 문제를 만나면 반갑게 답을 체크하고, 안간힘을 써서 도로 위의 기억을 꺼낸다. 그리고 딸깍, 종료 버튼을 누른다. 결과는 합격. (!!!!!!!!!!!!) 쾌재를 부르며 안도한다. 남은 기능과 주행도 오늘처럼 평탄하기를!




 번째 관문: 기능 시험 

내 실패는 이랬다. 그건 아마도 잊을 수 없는 팔 월, 한여름의 시험 이리라. 폭염이 이어지던 어느 날, 눈을 뜨자마자 언니와 만나 셔틀버스에 오른다. 일기 예보는 태풍이 올 거라는 소식을 전한다. 그래서일까, 온몸으로 열기가 퍼진다. 대기실에 들어가 몸을 가볍게 한다. 출석체크 후 배정받은 강사님과 담소를 나눈다. 그는 나의 전공을 묻는다. “피아노 쳐요. 오른발로 늘 페달을 밟아서 엑셀이 익숙한 것 같긴 한데, 떨리네요.” 그렇게 처음으로 핸들을 잡은 쫄보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움직이는 차가 무서워서 브레이크를 밟기도 하고 주차 브레이크가 어려워서 한참 헤매기도 하고. 몸을 웅크리고 잔뜩 긴장한 채 교육을 받았더니 두통이 생긴다. 아주 가끔 흥미롭기도 했지만.


화요일 여덟 시, 운전석에 앉아 어제의 실수를 떠올린다. 좌측 깜빡이와 “돌발” 경고음에 놀라지 않도록 주의한다. 주차까지 잘 마치고 나면 미션 성공. 그러나 변수는 어디서나 있기 마련이다. 다른 차들과 뒤엉켜 교차로 지연으로 감점되고 만 것. 교육 시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출발선으로 이동한다. 가상 시험을 겨우 한 번 끝냈을 뿐인데, 기계가 없는 차량으로 바꿔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렇게 어영부영 3교시가 지나가고 홀로서기의 문턱에 선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하는 시간. 시동을 걸고 처음부터 삐끗하긴 했지만 감점 없이 주차 구간에 도착한다. 그때 내 마음에 폭풍을 일게 만든 건 바로 감독관의 잔소리와 짜증 섞인 말들. 결국 인상을 쓴 채 대기실로 돌아간다.

오전 열 한시, 시험이 시작된다. 응시생들이 하나둘씩 밖으로 나가고 그 뒤로 내 이름이 불려진다. 안내 방송을 따라 침착하게 움직여보지만, 역시 쉽진 않다. 연습 때보다 더 긴장했을 테니 그럴 수밖에. 다행히 아무런 문제 없이 주차 구간에 도착한다. 그리고 심호흡과 함께 핸들을 돌린다. 얼마 후,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주차 탈선. 감점입니다. 주차 시간 지연. 실격입니다.” 탄식이 새어 나오면서 마음이 바닥 끝까지 가라앉고 만다. 사실 주차선을 얼마나 넘었는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순 없지만, 나는 그렇게 시험에 불합격했다.

​500칼로리나 되는 치즈 번을 입으로 욱여넣고 울컥한 마음을 달랜다. 주어진 교육 시간은 이미 끝났고 연습할 수 있는 차도, 연습 면허도 없는 상태. 해서 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그리고 학교. 또 한 번의 위기를 맞는다. 개관 시간을 단축한다는 안내가 도서관 문 앞에 붙어있는 것. 하아. 왜 오늘은 하는 일마다 엉망인지. 불 켜진 405호에 들어가 하소연을 시작한다. “주차 탈선으로 불합격했습니다. 아, 진짜 너무 속상해요!” 오빠는 웃으며 약을 올리고 교수님은 한숨을 쉬신다. “아이고. 그냥 하면 되는 건데, 그게 어렵니?”


며칠 전에 읽은  제목이 떠오른다. <그래도 계속 가라>,  실패가 어떤 날의 동력이 되리라고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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