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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12. 2019

엄마의 병실에서

소홀했던 감정을 되찾은 날, 이를 테면 평범한 것에 대한 감사 같은.

엄마, 며칠 사이에 이렇게 추워질  있어?” 잠에서  딸은 볼멘소리로 투정하며 소파에 앉는다. 엄마는 행복하다는  웃으며  얘기를 늘어놓는다. 오래된 나무와 조용한 사람들,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긴긴 문제를  풀었다는 이야기. 그녀는 모든  가지런히 정리될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옆에 있던 아빠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그저 꿈일 뿐이라고. 입추를 기점으로 새로운 계절이 피어나고 있다. 낮에는 여전히 뜨겁고 눈이 부시지만, 바람이 분다. 넓은 구름 아래로 산이 흔들린다. 느릿느릿, 거대한 초록빛 파도를 만든다.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아빠를 도왔다. 할머니는 수돗가 옆에, 엄마와 동생은 창고 옆에, 나는  사이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란 박스를 전부 비운 후에는 미소를 머금고 집으로 들어간다.

오전 여덟 , 편식하는 동생을 위해 단호박을 손질한다. 단호박이 익는 동안 얼린 블루베리와 요플레를 접시에 담는다. 지극히 평범하고 소박한 식탁에  사람이 모여 포크를 든다.  바랄  없는 아침이다. 당분간 엄마는 단호박을 사러 자주 마트로 향할 것이다. 막내와 나는 무슨 재료를 더할지, 어떤 요리를 할지 고민할 테고. 둘째가 집에 있었다면 오븐을 사용했겠지만, 그녀는 지금 호주에 있다. 트와이닝 티가 아닌 차가운 사과즙을 마실  머나먼 타국에 그리운 마음을 날려 보내곤 한다. 아마 완연한 가을이  때쯤 티백을 찾을지도 모른다.

엄마가 입원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먼지가 날리고 열기가 느껴지긴 해도 바람이 모든  용서한다. 염소들이 먹을 풀을 나르고 갈색빛 털을 가진 아기 염소를 사랑스럽게 쳐다본다.  주위에 있는 수많은 이들이 질투할  뻔히 알지만, 때로는 들끓는 감정을 주체할  없을 때가 있다. 그렇게 한낮의  부분을 보내고 제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무모한 일을 벌인다. 어쩌면 평소처럼 모든 일을 마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팔레트를 잡고 있었고 엄마는 난간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떨어졌다. 비명을 지른 사람은 나였다.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려가 엄마를 붙잡았다. 라디오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에릭 사티의 곡을 소개한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동생에게 연락한다. “엄마가 다쳤어.”



남매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뉜다. 누나는 구조대에 도움을 요청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주소를 읊는다. 동생은 엄마의 상태를 재차 확인한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영원 같은 순간이 흐른다. 엄마의 신음 끝에 응급차가 도착한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에게 모든 희망을 건다. 그들은 침착하게 엄마를 옮기고 조치를 취한다. 바보 같은 딸은 아픈 엄마 앞에서 눈물만 훔친다. 동생이 없었으면 울음을 참다 목이 막혀서 호흡 곤란으로 기절했겠지. 환자를 두고 기절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창문 너머로 우리를 따라오는 아빠의 차가 보인다. 아빠는 지금 엄마만큼 힘들겠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눈물을 닦는다. 병원에 들어와 응급실  앞에 멈춘다.  순간 엄마의 주문이 스친다. 그녀의 손을 잡고 말한다. “엄마, 정신 똑바로 차렸어?”

아빠는 엄마 옆을 지키고 동생과 나는 대기실에 남는다. 밀물과 썰물처럼 환자와 보호자가 병원 안을 오간다. 아이의 눈이 깜빡일 때마다 작은 호수를 만들 것만 같다. 고함치는 할머니, 아픔을 호소하는 아저씨, 환자에게 잔소리하는 아줌마까지. 모두 웃음기를 잃고 숨을 쉰다. 엄마가 항생제를 맞고 인상을 쓰는 동안 고개를 돌린다. 엄마의 아픔과 정면으로 맞설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엄마는 우리 남매를 키울 , 얼마나 자주 병원을 다녔을까,  번이나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그러는 동안 그녀의 마음은 어떤 모양으로 허물어지고 다시 회복됐을까, 어떻게 이겨냈을까.

입원실로 옮겨진 오후, 타운즈빌에서 걸려온 영상 통화에 재빨리 응답한다. 동생은 새까맣게  얼굴로 질문을 쏟아낸다. - 병원에 있어? 엄마는 어쩌다 다쳤는데? 얼마나 입원해야 된다는데? 찰나의 악몽을 꺼내다 말고 화면을 천장으로 돌린  운다. 주어진 본분을 저버리고 말았다.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마음을 겨우 달래고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한여름에 있었던 , 캐셔를 관두고 이사할 새집, 미조 주민이 대전으로 돌아오는 날짜 같은 시시콜콜한 주제로. 그러다 보면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진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통화의 마침표는 아빠의 그리움이 된다. “아빠가 얼른 오래. 11월에 한국으로 돌아와.”

모녀의 긴장이 와르르 쏟아지면서  사람 모두 잠에 빠진다. 얼마쯤 흘렀을까. 싸늘한 에어컨 공기에 깨어 엄마의 손을 잡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속에 섬이 있다면,   안에 바위가 있다면, 엄마의 바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아주 많이 단단할 거라고. 나는 당신의 강인함을 닮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폭풍을 만나도 의연할  있는 힘을 기르며 주어진 길에  당당하게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연약하고 흠이 많은 바위에 여유가 새겨지겠지.

여름을 보내며, 엄마와 함께 있는 701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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