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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캐롤 Aug 19. 2019

엄마와 딸의 여름

병실에서 흘려보낸 여름의 조각, 그녀와 나의 이야기


701, 환자들의 이야기 

여섯 시도 안 된 새벽, 약을 받는 일로 아침을 연다. 일어나자마자 복숭아로 허기를 달래고 몸을 움직인다. 엄마는 어제보다 유연하게 걷는다.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한 후 식판에 수저를 놓는다. 밥그릇과 반찬의 수는 정해져 있지만 엄마와 나의 식탁은 늘 넉넉하다. 인심 좋은 이웃들 덕분. 식사 시간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과일을 찾는다. 이렇게 먹는 데 금세 배가 고파지는 이유는 왜일까. 다행히 체중계에 찍힌 숫자는 정상. 다시 마음 놓고 간식을 찾는다.

3번 침대에서 대화의 꽃을 피운다. 사고 당시 은인이 된 댕댕이 이야기부터 보도콜리 열세 마리와 작은 농장을 사랑한다는 말로. 얇은 담이 허물어지자 5번 침대에 계시던 아줌마가 귤을 나눠주신다. 그녀는 신문을 읽거나 명상을 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잔소리를 달고 사시는 2번 침대 할머니. 늘 뭔가를 지켜보시고 못 미더운 눈빛을 보내시지만 우리는 미소로 답을 대신한다. 유일하게 환자복을 입지 않은 간병인이 말한다. “두바이에서 구걸하면 떼돈을 번대요.” 할머니를 제외한 모든 환자들이 눈을 반짝인다. 네 여자는 언제 비행기를 탈지, 그곳에서 얼마나 머물지 고민한다. 하루 종일 웃음이 끊이질 않는 병실에 정적이 흐르는 순간은 주사 바늘이 도착했을 때. 엄마의 표정으로 아픈 정도를 측정한다. 어서 몸이 회복되어야 할 텐데. 겁 많은 보호자는 치료의 현장에서 시선을 거둔다.

엑스레이 검사, 짧은 산책, 독서와 필사를 마쳤는데도 여전히 한낮이다. 등나무 터널에 들러 남은 여름을 누린다. 이미 지나갔을 보랏빛 꽃의 향연을 궁금해하다 나무 의자에 앉는다. 오늘은 무성한 초록이 아름다운 잔상을 남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엄마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정원을 거닐며 휘파람을 불게 되기를 바랄 뿐. 병실로 돌아가자 환자의 걱정 섞인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가 아침은 먹었는지, 일은 잘하고 있는지. 그녀의 걱정 뒤로 할머니의 한숨이 이어진다. “아들은 이 더운 날 힘들게 일을 하는데, 나는 혼자 편하게 누워있네.” 아이고. 이 환자분들은 아픈 몸으로 누굴 이렇게 걱정하시는 건지.



금세 하루의 긴 부분이 흐르고 저녁이 내린다. 자판기 옆 작은 숲에 도착한다. 나무도 새의 지저귐도, 구름의 그림자도 없지만, 이곳에는 온기가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향기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은 햇빛이고 그 만남의 연장선은 나무의 뿌리가 된다. 내 숲에 씨앗을 심은 이들은 716호 노부부. 그들은 눈빛만으로도 두 사람의 세상을 정의할 수 있으리라. 할아버지가 중국에 대해 말씀하시는 동안, 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손에 들고 예쁜 미소를 지으신다. “그거이 뭐라고. 일단 이것 좀 드셔 봐요. 하나 먹다 둘이 죽어도 모를 맛이라니까. 아이, 참 달다.” 그 모습은 해질 무렵의 어떤 선물로 남는다. 할머니의  번째 손가락에 있는 낡은 진주 반지가, 할아버지의 애틋한 손길이 숲에 아름다운 장면이 된다. 나는 이곳에서 사랑을 배운다.  감사를 배운다.






1번 침대에 유쾌하고 씩씩한 환자분이 들어오셨다. 어찌나 거침이 없으신지, 아마 환자들과 간호사를 제외한 사람들은 할머니의 갈비뼈가 골절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또 우리는 자주 웃었다. 엄마가 주사를 맞을 때 인상을 쓰면 할머니는 적막을 깨곤 하셨다. “혼자 뭐 신 거 먹는가?” 병실은 금세 웃음바다가 된다. 하지만 할머니가 뒤로 넘어지신 후,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비상에 걸렸다. 나는 늘 할머니의 움직임을 관찰했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식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책을 읽던 엄마가 말했다. 책장을 덮은 이유는 누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고. 어쩌면 한 권의 책 보다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가 더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면서.

병실에 예쁜 꽃이 피었다. 우리는 꽃의 이름을 알아냈지만, 저녁이 되자 긴 줄기가 힘을 잃고 꺾인다. 엄마는 물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러자 병실에 처음 오신 아저씨께서 벌떡 일어나신다. 얼마 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투박한 물병이 금세 단정한 모양으로 변하고, 시든 꽃은 노란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한창 수다를 떨고 있던 여자들이 말한다. 당신의 솜씨는 보통이 아니라고. 소란한 중에 꽃 이름을 상기시킨다. “헬리옵시스.”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내가 할 일이 없어서 한 거요. 하하하.” 갈비뼈 환자는 복대를 부여잡은 채 웃고 이모와 나는 엎어져서 폭소한다. 금세 어둠이 내린다. “자기 전에 홈런 한 번 치셨네.”


일요일 아침, 이모와 엄마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틈을 타서 산책을 나선다. 등나무 정원을 지나 여름 공원에 도착한다. 매일 창문 너머로만 봤던 풍경 앞에 서자 벅찬 감정이 쏟아졌다. 오래된 소나무, 꽃이 핀 배롱나무, 불두화, 연꽃이 공원을 감싸고 있고 물속엔 여름의 끝무렵이 담겨 있다. 낡은 나무 의자는 어딘가 엉성하게 뒤틀려 있지만, 그 사이로 자라난 초록 풀이 생기를 더한다. 천천히, 깊은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울컥이는 마음에 걸음을 멈춘다. 엄마와 매일 아침 이 아름다운 곳을 만끽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여전히 뜨겁지만 곧 그리워질 이 공기를, 그리고 찬란한 빛과 매미소리를, 눈부신 햇살을 함께 누린다면 좋으련만. 부러진 갈비뼈가 얼른 회복하기를 바랄 뿐.

7층 병동에 온 지 팔 일째 되는 날, 우리는 더 이상 고물 기계나 낡은 것들을 신기해하지 않는다. 골동품 가게에서도 찾기 어려울 법한 브라운관 텔레비전도, 화장실 샤워기 아래 돌려 쓰는 수도꼭지도, 뚜껑을 열어 온도를 맞추는 라디에이터도. 미지근한 물을 조절할 줄 알게 됐고, 컴퓨터 모니터 만한 텔레비전으로 여럿이 모여 드라마를 본다. 또, 이른 아침 전자레인지 앞에서 줄을 서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맞은편 병실에 계시는 노부부와 다정한 아침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그들과 음식을 주고받으며 나눔의 미학을 실천하기도 하고, 떠나는 사람의 길을 축복하는 의미로 엘리베이터 앞까지 배웅을 가기도 한다.

아마 엄마와 나의 팔 월은 비슷한 조각으로 남게 되리라. 겨우 몸을 일으켜 화장실을 오갔던 새벽,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에 병원으로 찾아왔던 아빠, 식후에 차려지던 화려한 과일 식탁, 팔짱을 끼고 걸어 다녔던 병동 복도, 701호의 독특한 환자들. 엄마의 추락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일이었지만, 소소하고 따뜻한 추억을 선물해주기도 했다. 그러니 갈비뼈 환자분, 어서 회복하고 다시 일어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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