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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츄 Jan 15. 2019

나 원래 그래

원래 그렇다는 말의 위험성

선생님, 저는 원래 수학을 못 해요. 


때는 2011년 초여름, 재수학원에서 친 모의고사 성적 발표가 난 날이다. 


당시 목표 점수보다 낮은 성적, 어이없는 실수에 기막혀하다 치킨이나 먹으러 가자 하던 참이었다. 

(재수학원 바로 옆에 아주 맛있는 치킨&호프집이 있었다) 


야자를 슬쩍 빠져볼까 하는데, 담임선생님만큼이나 나를 챙겨주시던 선생님께 불려 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피하고 싶던 주제가 등장했다.


"이번 수학 시험 점수 보자. 어떻게 된 거니?"


- 에이 샘 저 원래 수학 못해요 ㅎㅎ 담에 더 열심히 할게요!


늘 하던 말이다. 이상하게 고등학교 내내 수학은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굳은 표정으로 선생님은 딱 한 마디만 하셨다.


"원래 그렇단 건 없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 치킨을 먹었는지는 가물가물하지만, 이 장면은 가끔 생각난다. 


(만화 주인공처럼 말 한마디에 각성해서 코피 터지게 열심히 공부하여 수학 천재가 되지는 않았다 물론.)



원래 그래 를 부정해볼 때


'원래 그렇단 건 없어' 란 말이 종종 사소한 고민이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기준을 주는 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내려버린 나에 대한 편견을 바꿔야 할 때, 도전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


나는 원래 가지를 싫어해 란 말을 계속 믿었더라면 어향가지가 얼마나 맛있는지 알지 못했을 거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랑 이런 관계니까 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지금도 감정 쓰레기통 신세로 고통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원래 예술 쪽엔 젬병이야 라는 생각에 그림을 그려 볼 시도조차 안 해봤다면,  


원래 나랑은 이런 거 안 어울려 하며 그 많은 경험들을 포기했더라면,


원래 그랬던 나의 세계는 딱 그 정도로 머물렀을 거다.



No, because가 아닌 Yes, but


사실 면접 준비를 하며 읽었던 말이다.


면접에서 반박을 받았을 때, 또는 토론 면접에서 상대방 의견을 비판해야 한다면 화법을 주의하라는 요지의 글이었다.


아니, 왜냐면 (너 생각은 이러저러해서 구려)가 아니라 
응, 너 의견도 이런 점에선 맞아 하지만 (내 생각이 좀 더 낫지 않냐?)


이게 말은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 적용하려면 힘들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니' 또는 '아니 그게 아니라'를 쓰는지.


장기하-그건 니 생각이고(다들 들어보세요)


아무튼 이 '원래 그래'를 깨기 위해서 다시 한번 이 방법을 적용해보려 한다.



아니 안될 거야. 왜냐면 나는 원래 꾸준히 뭘 못해 

그렇지 내가 뭘 꾸준히 잘 못하긴 하지. 하지만 벌써 4달째 매일 운동을 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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