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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미 Jun 30. 2021

엄마의 인스타그램

"자꾸 저장공간이 없다고 나와!!"

엄마가 또 아이패드를 만지다 분통을 터뜨렸다.

이번엔 용량 문제였다.


프로크리에이트로 그린 그림 전부를 원본으로 저장하니 엄마의 아이패드 속 저장공간이 빠르게 없어져가고 있었다.

클라우드를 알려드릴까 구글 포토를 알려드릴까 고민하다 인스타그램을 떠올렸다.


"엄마 인스타 만들어줄게 거기에 보관해."

"인스타그램? 그거 내가 만들어도 되는 거야?"


엄마는 어디서 들었는지 인스타그램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그건 연예인들이나 유명인사들만 하는 거라고 알고 계셨다.


"아냐 아무나 만들어도 돼. 대신 꾸준히 하루에 하나씩 올려야 탈퇴 안 당해."

매일 부지런히 그림을 올리라고 거짓말을 보탰다.

"나 그건 자신 없는데... 바쁠 때도 있고 그래서..." 엄마가 주저하며 말했다.

"너무 안 올리면 안 된다는 거지 사실 일주일에 세 개 정도로도 탈퇴는 안 시켜."

혹여 엄마가 겁을 먹고 안 할까 봐 나는 빨리 말을 바꿨다.


인스타그램을 가입하는 과정을 혼자 해보라고 맡겨뒀는데, 1시간도 안되어서 분통을 터트리며 안 한다고 포기하길래 가서 같이 도와드렸다. (=대신해드렸다)

그림을 선택하는 법부터 해시태그를 올리는 법 까지 알려드렸었는데 나중에 엄마가 올린 걸 보니 해시태그는 온대 간데없고 단어만 쭉 나열되어 있었다.

설명할 때 대답은 자신 있게 하더니만 아무래도 이해를 못하셨던 게 분명해 보였다.

엄마에게 맡겨두면 안 되겠다 싶어 메모장에 해시태그 포함한 단어들을 따로 적어드리고 그걸 복사해 인스타그램에 붙여 넣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알려드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일곱 번째 설명쯤에 아이패드로 내가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는 전 과정을 엄마 휴대폰 동영상으로 찍어두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면 이 글을 적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메모가 없어졌어. 아무리 찾아도 메모장에 적어둔 게 안 보인다니까!"

도대체가 메모를 찾을 수가 없다고 답답해하셨다.

그럴 리가 없다며 메모장에 해시태그를 다시 적어드렸다.

메모가 사라졌다는 엄마 말을 믿지 않는 딸이 오히려 답답한 듯 엄마는 시연을 했다.

자신 있게 "자 봐봐 내가 어떻게 했냐 하면..."을 외치며 '복사'가 아닌 '오려두기'를 누르셨다.

"아니 엄마 오려두는 거 말고 그 옆에 '복사하기'!" 이럴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간다.

큰소리로 열내며 알려드리나, 조곤조곤 알려드리나 똑같이 최소 다섯 번은 설명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순간 답답함에 커지는 목소리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다.


여하튼 엄마에게는 그렇게 인스타그램이 생겼다.

하트를 받는 재미에 꽤나 꾸준히 매일같이 올리셨다.

나중에는 욕심이 생기시는지 배웠던 영어문장과 읽었던 시, 문장등을 함께 올리셨는데 그 모습을 보며 괜히 뿌듯하기도 했다.


하루는 엄마가 집에서 

"어머!"를 세 번 넘게 연발하길래 (사실 이 정도 호들갑은 자주라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왜 무슨 일인데?" 하며 엄마 방으로 달려갔다.

"글쎄 박서준이랑 아이유가 나를 팔로우했어!" 엄마가 감격하며 말했다.

"뭐? 말도 안 돼."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보지도 않고 아니라는 말부터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스타그램은 알림을 켜 두면 추천하는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겠냐는 알림이 오는데 엄마는 팔로우 세 글자만 보고 박서준과 아이유가 엄마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한 줄 아신 것이다.

나는 정말 너무너무 웃겼다.

"엄마... 그 사람들 바쁜 사람들이야..."

"아.. 어쩐지... 너무 부담스러울 뻔했네~" 사실을 알고 오히려 안도한 긍정적인 엄마였다.


-


엄마는 인스타그램을 하는 동안 종종 나를 웃게 하더니 브런치를 적는 과정에서도 역시나 나를 웃겨주셨다.

"엄마 인스타 만든 이야기 브런치에 적어보자!"

"다 적었어 한번 확인해줘." 며칠 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글을 읽다가 혼자 빵 터졌다.


글 중간에 사진을 첨부했는데 사진 바로 아래 있는 사진 설명란을 찾지 못한 채 사진 오른쪽 아래에 제목을 적어두신 것이다.

그쪽에 제목이 가게 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스페이스바를 눌렀을지를 생각하니 너무너무 웃겼다.

나는 일부러 그 부분을 수정하지 않았다.

엄마만 할 수 있는 방식 같아서, 그게 엄마만의 브런치가 아닐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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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인스타를 보는 일을 내 일상에서 작은 행복이다.

엄마의 그림과 글, 그리고 메모장에서 복사해왔을 정갈한 해시태그와 하나하나 넘겨보며 열심히 찾아 넣었을 이모티콘을 보면 웃음이 난다.


엄마가 이런 취미를 가지고 혼자만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시는 게 어느덧 자랑스럽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주변에 엄마의 인스타를 자랑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엄마가 인스타그램의 스토리, 릴스 등의 존재를 알고 마스터하는 그날까지 옆에서 열심히 도울 것을 다짐하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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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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