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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BJ Jun 11. 2021

65년생 엄마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했다.

50대 부모님의 선물로 아이패드를 추천합니다

2020.03.11

엄마의 55세 생신 때 우리는 아이패드를 선물로 드렸다.


엄마 생신 몇 주 전, 평소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시던 엄마는 내가 아이패드로 그린 그림들을 보며 내심 해보고 싶어 하시는 눈치였다. 

나는 선뜻 내 아이패드를 빌려드렸다.

하지만 딸의 물건을 망가트릴까 부담이 되셨던지 몇 줄 그어보고는 사용이 어렵다고 하시며 이내 그만두셨다.

그 모습이 마음에 걸려 곧 있을 엄마의 생신 선물로 아이패드를 드리기로 했다.

그렇게 엄마에게는 만 55세에 아이패드가 생겼다.

원한적도 선물로 받을 거라고는 예상해 본 적도 없던 아이패드를 선물 받은 엄마는 좋아하시기보단 부담스러워하셨다.

비싸게 주고 산걸 잘 사용하지 못할까 봐가 이유였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불만을 토로하 신건 엄마가 아닌 아빠였다.

"세상에 낚시 과부는 들어봤어도 그림 과부는 처음이다" 하시며.

엄마는 정말이지 잠을 자지 않는 모든 시간을 아이패드와 함께했다.

아이패드에는 사용시간 같은 것이 나오는데 일 평균 그림 어플인 <프로 크리에이트>의 사용시간이 12시간에 가까울 정도로 그야말로 완전히 빠져들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어학공부용 화웨이 패드로 유튜브를 보며 하루에 10시간씩 프로 크리에이트 영상을 보며 따라 그리고 사용법을 익히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엄마는 그걸 따라 하면서 자주 분통을 터트렸는데 (정말 이 문장 말고는 대체할 문장이 없다) 이유는 이렇다.

프로 크리에이트 사용법을 올리는 유튜버는 주로 젊은 사람이어서 아이패드를 사용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가령 애플 펜슬을 블루투스로 연결하는 법, 듀얼 화면을 띄우는 법 같은 것에 대한 설명 말이다.

그런 것들이 답답할 때 엄마는 또다시 검색을 하는데 검색기록을 보면 가관이다.

'애플 펜슬을 아이패드에서 사용하고 싶어요' '아이패드 화면이 두 개가 되려면?'과 같이 사람에게 물어보는 듯한 문장 그대로 검색을 진행한다.

'듀얼모드', '블루투스' 같은 메인 키워드를 제외하다 보니 높은 확률로 엄마는 검색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하셨고, 그때마다 넘어가지 않는 부분에서 방법을 찾고 시도하며 한참을 보내다 이내 성공하지 못하고 분통을 터트리셨던 것이다. 내가 퇴근하기만을 기다리며.

 

하루는 애플 펜슬의 충전방식을 묻길래 마침내 아이패드에 연결되어있는 펜슬을 가리키며 저기에 저렇게 꽂아놓으면 된다고 대답했는데 웬걸.

엄마는 그때부터 한참을 내가 외출했을 때마다 내 방에 슬쩍 들어와 내 아이패드로 엄마의 펜슬을 충전했다고 한다. 언젠가 내가 아이패드를 챙겨 나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그럼 내 연필 충전은?"이라고 묻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내 아이패드가 그렇게 쓰이는 줄 모를 뻔했다.


또 다른 하루는 엄마가 프로 크리에이트 유튜브를 볼 때 옆에 있었는데 유튜버가 "이렇게 화면을 반으로 나눠 원하는 사진을 가져오시면 됩니다" 하고 설명하자 엄마가 나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저 사람은 좋은 거 쓰나 봐~"

맥락을 보아하니 엄마는 엄마의 패드도 저게 가능하다는 걸 모르는 게 분명했다.

" 엄마. 엄마 것도 돼." 툭. 툭. 엄마 패드로 화면을 옆에 띄워드리며 말했다.

"뭐어~~!!" 

사진을 가져오는 게 안 되는 줄 알고 손수 화면을 촬영했던 (심지어 캡처도 모르셔서 화면을 카메라로 찍곤 하셨다) 그동안의 엄마는 굉장히 분해하셨다.

당연히 비싼 거만 가능한 줄 알고 묻지도 않으셨던 엄마는 아이패드를 가진 지 어언 두 달 만에 엄마의 패드 화면도 둘로 나눠진다는 것을 아신 것이다.


이 외 그때그때 찍어줄걸 싶은 생각이 드는 여러 가지 해프닝이 있지만 이 이야기들은 기억이 나면 또 해보려고 한다. 


이제 엄마는 나보다도 훨씬 아이패드를 잘 사용하신다.

적어도 '프로 크리에이트'라는 어플은 전문가 같이 사용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전문가가 아니고서 누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하루에 적어도 3시간 많게는 12시간을 그걸로 그림을 그릴까?

아이패드를 드리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평생 엄마의 취미가 아이패드 그리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만을 토로하셨던 아빠도 이제는 엄마의 그림을 자랑스러워하시며 프사에 등록해 놓으시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먼저 그려달라 요청하시며 친구 모임 단톡에 은근한 자랑을 일삼으신다.


엄마는 이제 사촌언니의 결혼사진을 그려 선물하는 고모가 되셨고, 조카의 생일 축하 카드를 프로 크리에이트로 그려주는 큰엄마가 되셨다.

이모들의 손주 그림 요청과 외삼촌의 회사 슬로건 디자인 요청 등을 받기도 하셨다.

앞으로도 엄마는 계속 그림을 그릴 것이다.

최초의 50대 아이패드 화가가 되기를 응원하며 나 역시 계속 엄마의 애플 펜슬을 꾸준히 바꿔드려야겠다.


2020.03.18 엄마가 그려주신 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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