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의 역설

조급함을 내려놓는 시간

by 앨리스킴

집안 곳곳에 시집을 놓아두면, 손 가는 대로 아무 페이지나 펼쳐 읽는 즐거움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하지 않아도 된다.

중간에 불쑥 끼어들어도 멋쩍지 않고,

말없이 빠져나와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느 날은 우연히 읽은 시 한 편이 추억이 되고,

또 어떤 날은 그리움이 된다.

가끔은 내 안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그날은 박상천 시인의 「줄다리기」라는 시가,

제목만으로도 내 마음을 세게 끌어당겼다.


줄다리기 / 박상천


줄다리기의 역설을 아는 이들은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힘이 강한 이가 힘을 쓴 만큼

그들은 뒤로 물러갑니다.

물러가고서도 이겼다고 좋아하지만,

그러나 아시나요

힘이 약해 끌려간 것으로 보이는 이들이

강한 이들의 영토를 차지하면서 전진하고 있다는 것을.


줄다리기의 역설을 아는 이들은

세상을, 조급한 마음으로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시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최근 내 경험이 떠올랐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은 느긋해져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점점 조급해졌다.

특히 건강에 대한 관심이 염려로 이어지면서, 운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마음을 조여왔다.

지금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두르고, 욕심까지 부렸다.

결과는, 몸과 마음이 오히려 나를 밀어내는 듯했다.


허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

나름 꾸준히 운동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검진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타고난 체질과 평소 잘못된 생활습관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어,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 당장 수술은 필요 없다고 했다.

하지만 평생 달래 가며 살아야 하고, 결국 운동요법이 답이라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처음에는 운동법을 차근차근 따라 해 보았다.

‘조금씩, 천천히’라는 원칙대로 매일 몸을 풀고, 자세를 교정하며 시간을 들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달라진 느낌은 미미했다.

마음 한편에서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평생 나아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조급함이 서서히 몰려왔다.


결국 욕심이 앞섰다.

권장 횟수보다 더 많이, 시간도 더 늘려 운동했다.

“빨리 좋아지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던 것이다.

그랬더니, 통증은 오히려 심해졌고 회복은 더 멀어졌다.

마치 내 몸이 조용한 항의를 하는 듯했다.

“잠시 멈춰. 너무 서두르지 마.”



줄다리기를 여러 번 해봤지만,

끌려간 쪽이 오히려 영토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시인처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늘 조급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온 건 아닐까, 스스로에게 조용히 묻게 되었다.


줄다리기의 역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은 더 느긋하게, 흔들리지 않고 살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곱씹다 보니 이 역설은 운동에서도, 또 인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당장의 ‘더 빨리’라는 조급함이 오히려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잠시 물러서는 것이 패배가 아니라 회복이 될 때가 있고,

조금 느리더라도 기다림이 전진이 되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


그 후 나는 조금 다르게 행동하기로 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하루에 한 번은 일부러 느리게 걸었다.

운동을 할 때도 내 몸의 신호에 귀 기울였다.

그러자 서서히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것이 느껴졌다.

빠르진 않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는 감각이 있었다.



오늘도 내 마음은 조급함과 평정심 사이에서 줄다리기 중이지만,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어쩌면 세상이라는 줄다리기에서 꼭 이겨야 할 상대는

남이 아니라, 내 안의 조급한 마음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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