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세상

나 홀로 집으로, 그 오싹한 추억

by 앨리스킴


오래전 TV에서 보던 ‘전설의 고향’처럼,

내 어린 시절 밤길에도 작은 오싹함이 있었다.



혼자 집에 있는데, ‘톡톡~’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초인종이 고장 났지만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뤄두던 참이다.


식구들이라면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올 텐데, 이 시간에 올 사람은 없다.

‘누구세요?’ 하고 말하려다 순간 멈칫하며 숨을 죽였다.


조금 궁금했지만 요즘 세상은 경계가 먼저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라, 내 집인데도 문 하나 마음 편히 열 수 없다.


아마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은 건, 타고난 성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깜깜한 밤길을 혼자 걸으며 ‘나 홀로 집으로’를 연습하던 그때의 내가

아직도 마음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때문일지도 모른다.


심지어 내 그림자에도 화들짝 놀라던 겁쟁이 시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겁많았던 내가 어떻게 그 밤길을 씩씩하게 다녔는지 아직도 신기하다.

지금 다시 하라면? 글쎄, 시작하기도 전에 주저앉아버렸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된 지금, 정작 무서운 건 도깨비도 귀신도 아니다.

바로 사람이다. 이건 좀… 웃픈 현실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어린 시절 우리 동네 그 밤길에서부터였을 것이다.



어릴 적 우리 동네는 철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닿는, 산자락에 붙은 작은 마을이었다.

가구 수라야 열두 집 남짓. 서로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도 줄줄 꿰고 있는 공동체였다.

<출처 : pixabay.com>


아이들은 매일 십오 리 길을 걸어 면 소재지에 있는 국민학교와 중학교에 다녔다.

고등학교를 가려면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 도시로 나가야 했다.


나는 막내라는 덕을 톡톡히 봤다.

큰오빠가 사는 큰 도시로 올라가 중학교부터 그곳에서 다닐 수 있었다.


토요일이 되면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과 엄마가 그리워 먼 길을 내려갔다.

시외버스를 타고, 또 마이크로버스로 갈아타며 다섯 시간을 달려야 닿는 고향 집.

그 시절엔 도로 사정도, 교통편도 지금 같지 않았다.



그렇게 달려 목적지에 도착하면 사방은 이미 어둑하고,

시커먼 산그림자가 괴물처럼 버티고 서 있었다.


거기서 우리 마을까지는 2km를 더 걸어야 했다.

어쩌다 같이 내린 몇몇은 근처 마을 사람들이라, 나와는 방향이 달랐다.


어느 동네에나 괴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인데, 우리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전화도 없어 ‘엄마, 마중 좀!’ 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그 길은 언제나 말 그대로 ‘나 홀로 집으로’였다.


그 길은 아이들 사이에서 ‘관문 코스’라 불리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어둠 속에서 하나씩 맞닥뜨려야 하는, 작은 오싹 미션 같은 길.

놀이동산 유령의 집처럼, 한 고비를 넘으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렸고,

그 모든 관문을 지나야 만 비로소 집에 닿을 수 있었다.


<출처 : pixabay.com>



첫 번째 관문 - 가산숲


밤이면 도깨비불이 날아다니고, 여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숲 어귀에 들어서면 발밑의 자갈 소리까지도 괴담 속 유령의 발소리처럼 따라붙는 것 같았다

나는 엄지를 안으로 말아 주먹을 꽉 쥔 채, 마치 올림픽 출전 선수처럼 냅다 뛰었다.


달리다 보니 시퍼런 불빛이 스쳐간 것 같기도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마 반딧불이었을 것이다.

(그땐 정말, 도깨비들이 오토바이라도 타고 쫓아오는 줄 알았다!)




두 번째 관문 - 철길 건널목


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적이 있다며, 귀신 이야기가 한 해도 빠짐없이 업그레이드됐다.

특히 비가 부슬부슬 오는 밤이면 하얀 소복 차림의 여인이 떠돈다는데…


이상하게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아이들 사이에서 그 소복여인은 해마다 조금씩 진화했다.

머리카락이 처음엔 무릎까지 내려오더니, 다음 해엔 발목을 덮고...

마침내는 허공을 떠다닌다는 괴담으로 변해갔다.


<출처 : pixabay. com>



세 번째 관문 - 제비실


6·25 전쟁 때 인민군 시체가 묻혔다고 해서 늘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밤이면 혼불이 어른거린다는 소문이 도는 곳이라, 내겐 가장 오싹한 관문이었다.


심장이 터질 듯 뛰고 머리칼이 쭈뼛 서며,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나는 주먹을 더 꽉 쥔 채, 뒤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내달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불보다 내 상상력이 훨씬 더 활활 타올랐던 것 같다.


<출처 : pixabay. com>



마지막 관문 - 애기장


보릿고개 시절 굶어 죽은 아이를 독에 넣어 묻었다는,

듣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한 장소였다.


지금 돌아보면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어린 나는 그저 ‘오싹 포인트’로만 기억했다.


<출처 : pixabay. com>



마지막 관문을 지나 모퉁이를 돌자, 드디어 동네 쌍둥이네 집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나는 그 순간부터 우사인 볼트도 울고 갈 속도로 내달렸다.


내리막길은 미끄럼틀처럼 쏜살같이 내려오고,

귀신이 앉아 있다는 대추나무 옆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훌쩍 지나쳤다.


마침내 우리 집 골목!


“엄마, 나 왔어!”


깜깜한 마루에 형광등 불이 번쩍 켜지면,

그제야 심장이 진짜로 제자리를 찾는 듯했다.




매주 토요일마다 집으로 향하는 길은 사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도시 생활이 익숙해지고 편해지면서, 시골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그 시절 어둠 속을 혼자 걷던 발걸음은 추억이 되었다.

도깨비나 귀신이 무서웠던 그때는,

어두운 길에서 가장 반가운 건, 혹시 마주칠지도 모를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사람을 더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다.

차라리 도깨비랑 마주치는 게 지금보단 덜 무서웠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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