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답은 밥상 위에 있더라.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폭염도 계절의 흐름에는 순응하는 걸까.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분다.
어쩌다 소매 사이로 훅 스며드는 바람이,
순간 오소소 소름을 돋게 한다.
그러고 보니, 절기상 입추가 지난 지도 어느새 일주일이 넘었다.
최근 기후 변화로 24 절기를 다시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은 섣부른 판단이라는 듯.
못 견딜 듯한 더위가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느낌이다.
계절은 여전히 자기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휴가철에 연휴까지 겹쳐
도시가 텅 비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저녁 무렵 나가보니 동네를 지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거리가 한산했는데,
요즘 경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니 혹시 그 때문일까 싶기도 하다.
“휴가 다녀오셨어요?”는 여름이면 당연한 인사말처럼 오가지만,
우리 부부는 올해 여름은 집에서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출퇴근이 없는 지금은
굳이 복잡한 휴가철에 나서지 않아도 하루가 즐겁다.
책을 읽고, 글도 끄적이고,
뒹굴뒹굴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분히 채워진다.
그런데 딱 한 가지, 먹는 일이 걱정이다.
육체적인 노동을 하지 않으니 배가 고프지 않은 게 문제다.
젊을 땐 몇 끼쯤 굶어도 거뜬했는데,
이제는 ‘밥심으로 산다’는 옛 어른들의 말이 절로 떠오른다.
끼니가 몸에 주는 무게가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먹고 싶은 건 딱히 없는데,
요즘은 끼니를 거르면 몸이 바로 방전된다.
맥이 풀리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며 기운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결국 ‘먹어야 한다’는 신호에 고분고분 따를 수밖에 없다.
오늘은 뭘 먹지?’
누가 메뉴판 들고 와서 “이걸로 하시죠~” 해줬으면 싶다.
이럴 땐 선택권이 괜히 짐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생각을 바꾼다.
그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이건 결국 배부른 소리다.
고민할 수 있다는 게 이미 감사한 일인데, 괜히 투정 부리다 혼날 일이지 싶다.
나는 체질상 살이 잘 안 찌는 편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부럽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다이어트와 씨름하다 늘 패배하는 우리 딸이나,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는 친구들에게는
내 체질이 조금 얄미워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하지만 저체중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면 딱 그만큼의 몸무게가 줄고,
기운도 살짝 빠져나간 느낌이 드니까.
연구를 보면,
약간 통통한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
건강하게 오래 살 가능성이 더 높다고 한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면서도 묘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우울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서로 다른 체질일 뿐.
그러니 살이 잘 안 찌는 나도,
혹은 살을 빼려 애쓰는 사람도,
서로의 사정을 조금씩 이해하며 바라보면 될 일이다.
결국, 이런 고민의 해답은 늘 밥상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뭘 먹을까?
유튜브에서 본 ‘원팬 크림스파게티’가 눈에 들어왔다.
요리에 잼뱅이인 우리 딸도 따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다.
하지만 집밥 30년 경력의 자존심에
그냥 흉내 내기보다는 냉장고 속 재료를 꺼내 내 식대로 변형해 보기로 했다.
“크림스파게티는 좀 느끼할 것 같은데.”
아들 녀석의 투정을 그냥 받아주기로 하고,
결국 ‘집밥식 로제 파스타’가 탄생했다.
우유와 고추장, 치즈를 넣어 느끼함은 잡고, 맛은 깔끔하게!
식탁에 올리자 남편은 늘 한결같은 멘트를 날린다.
“당신이 만든 거면 뭐든 OK야!”
33년 차 결혼 생활에서
남편이 터득한 최고의 생존 비결이다.
눈치 9단 아들은 한 술 더 뜬다.
“우리 동네 파스타 가게, 문 닫는 거 아냐? ㅋ”
“아들, 다 티나~ 너무 나갔어 ㅎ”
돌이켜 보면, 먹는 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되고,
가족과 웃음을 나누는 순간이 되기도 한다.
체중계 숫자에 연연하기보다는,
오늘도 맛있게 먹고,
몸이 필요한 만큼만 챙기는 것이 더 소중한 일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또 뭐냐고?
아직 고민 중이다.
아들 말대로라면,
우리 동네 가게들을 위해 오늘 요리는 좀 참아야 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