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희망과 진실 사이

by 앨리스킴

얼마 전 친구 가족의 상황을 듣고,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졌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얼마나 어려울지, 제 자신도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팔순을 훌쩍 넘기고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납니다.

정갈히 몸을 단장하고, 염주를 돌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천수경을 두세 번 완독 한 뒤에서야 새벽 기도가 끝나지요.

평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의식입니다.


덕분에 사 남매는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손주들 역시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 원하는 학교와 전문직으로 진출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의 정성 덕이라 여기시며, 건강이 예전 같지 않은 지금도 새벽 기도를 거르지 않으십니다.


몇 해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셨을 때도, 어머니는 세월의 흐름 앞에 담담히 마음을 다스리셨습니다.

큰 고생 없이 가신 것도 복이라 여기며, 슬픔을 조용히 삼키셨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새로운 근심이 생겼습니다.

몇 년 전 둘째 아들이 사고로 중환자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신 뒤, 지금도 아들의 안부만 걱정하고 계십니다.

코로나 시절이라 얼굴 한 번 볼 수 없었고, 전화조차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채, 기도에 마음을 의지하고 계셨습니다.


“코로나도 다 끝났는데, 어떤 중환자실이길래 얼굴조차 못 보여주느냐.”

어머니는 답답한 마음에 큰아들에게 떼를 쓰시고, 셋째에게는 협박을 하시기도 합니다.

막내에게는 “의사라면서 그 정도 힘도 못 쓰냐”며 화까지 내시지만, 결국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늘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느라 애쓰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무겁기만 합니다.

곧 다가올 추석,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면 둘째의 빈자리를 두고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질까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어머니는 둘째가 중환자실에 있다고 믿고 계셨지만,

사실은 사고가 아니라 암 투병 끝에 코로나 시기에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의 건강이 크게 약해진 터라, 그때는 차마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 “지금은 아니다”라며 입을 다물었고, 결국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이제 와서 사실을 전하자니, 어머니께 큰 충격이 될까 두렵습니다.

하지만 기약 없는 희망 속에서 새벽 기도를 이어가시는 모습을 그대로 지켜보는 것도, 마음 한편에서는 불효처럼 느껴집니다.

“차라리 희망이라도 붙잡고 사시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진실을 전해드리는 것이 옳다”는 생각 사이에서, 가족들은 지금도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친구 가족이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생생히 느껴집니다.

나 역시, 만약 내 부모님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사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렵겠지요.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때로는 진실보다 자비가 먼저여야 한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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