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감사하며 시작한다

숨 쉬고 달릴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by 앨리스킴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물 한잔을 마신다.

베란다 창으로 오늘을 내다보며

감사 인사로 하루를 맞이한다.


‘오늘도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로운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기본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특별한 선물처럼 감사히 잘 쓰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면,

창밖의 풍경이 한결 따스하게 스며든다.


그 마음 그대로 창밖을 바라보니,

계절의 변화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날마다 한 뼘씩 높아지고,

길가의 나무들은 저마다 겨울 채비로 분주하다.


경비실 옆 단풍나무도 햇살에 아른거리는 홍시처럼 붉게 익어간다.

때 이른 서리라도 내려앉으면,

채 붉게 타오르기도 전에 바스락 말라 떨어지겠지.


아파트 벽 사이로 줄지어 선 메타세쿼이아는

아직 초록을 벗지 못해 덜 익은 모과처럼 누르스름하다.

저 잎들이 갈색 코트빛으로 물드는 날,

겨울은 문턱까지 다가와 있을 것이다.




“날씨가 요즘 정말 가을 가을 하네.

괜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럼 자전거 타고 우리도 가을 소풍 갈까?”


남편이 주섬주섬 간식을 챙긴다.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냉동실에서 모둠떡을 꺼내 데운다.


마음만 먹으면 별다른 준비 없이도 훌쩍 나설 수 있음이 감사하다.


사소해 보이는 일조차 조건이 맞아야 가능한 법.

둘 다 건강해야 하고, 시간이 허락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서로 마음이 같아야 가능한 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오랜만에 자전거를 꺼냈다.

허리병이 난 뒤로 내 애마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새나간 젤리공처럼 말랑해진 바퀴에

공기를 채워 주니 통통 튀며 가벼워졌다.

페달을 밟는 내 발도 덩달아 힘이 난다.


감사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는다.

내가 움직이는 만큼 세상도 함께 흘러가는 것 같다.


신나게 달리며 바람을 맞으니

몸과 마음이 함께 리듬을 타는 느낌이다




앞서 달리는 어르신 한 분이 보였다.

헬멧, 고글, 슈즈까지 완벽한 라이딩 복장으로

한눈에도 프로의 포스가 느껴졌지만,

언덕길에 들어서자 페달을 밟는 발끝은 살짝 힘겨워 보였다.


‘폼만 잡은 건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괜히 경쟁심이 발동해,

‘살짝 추월해 볼까’ 하고 마음먹는 순간,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그분의 자전거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 어르신은 작은 점처럼 멀어졌다.

호기롭게 따라가려던 나는 금세 숨이 차올라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헬멧 사이로 삐져나온 백발만 보고

겉모습만으로 속단한 내가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종종

보이는 대로 쉽게 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누군가의 말투, 행동, 외모, 심지어 삶의 방식까지도

단편적으로 보고 섣불리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겉으로 보이는 것과 실제 사이에는 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마음은 훨씬 너그러워진다.



뒤에서 지켜보던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그냥 우리는 우리만의 속도로 가자.”


맞는 말이다.

각자의 속도, 각자의 방식대로, 천천히 가도 괜찮다.




한참을 달리다 바다를 만났다.

갯벌 위 도요새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치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를 이미 아는 듯

조용히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이 정겹다.


썰물로 잿빛 갯벌이 드러나고,

드디어 물새들의 사냥이 시작되었다.


자전거 도로를 따라 다시 길을 잡으니,

옆으로는 금빛 억새밭이 바람결에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 사이로 스며드는 코발트빛 하늘,

솜사탕처럼 피어난 구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마치 가을이 빚어낸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셔터를 누르던 손이 멈추고,

시간마저 잠시 멈춘 듯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억새를 바라보며

내 마음도 평화롭게 일렁였다.


‘아, 행복하다.’


여린 억새는 결코 바람에 맞서지 않는다.

바람도 억새를 살짝 비켜 지나간다.


자연은 누구에게 배운 것 없이도, 제 나름의 질서를 지킨다.



바람과 햇살 속을 달리며 마음을 살폈다.


감사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할지 모른다.


오늘도 그렇게, 우리만의 속도로

조용히 감사의 길을 걸어간다.


오늘 하루도 감사히 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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