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할 일, 남자 할 일은 따로 없다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by 앨리스킴


몇 해 전, 둘째 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아이들이 결혼기념일 케이크를 주문했는데,

그 위에는 “(엄마)ㅇㅇㅇ(아빠)ㅇㅇㅇ”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언니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이거 혹시 잘못 쓴 거 아니야?

원래 아빠 이름이 먼저 와야 하지 않나?”


그러자 딸아이가 웃으며 말했다.

“이모, 요즘은 엄마 이름이 먼저예요.”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단순히 이름 순서의 문제가 아니었다.

부부 사이의 ‘누가 우선인가’를 따지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언니가 결혼하던 시절엔

남자 이름이 앞에 오는 게 당연했고,

남편이 집안일을 하면

보는 사람이 괜히 불편해지던 때였다.


한동안 언니도

그런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제부가 설거지를 해도

“잘하네요~” 하며 환하게 웃는다.


세월이 흐르며 언니의 시선도 여유로워졌다.

예전엔 낯설던 풍경이었는데,

이제는 어느새 따뜻한 일상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그런 ‘틀’ 안에서 자라왔다.

남자는 밖에서 일하고,

여자는 집안일을 책임져야 한다는 사회적 기대와

관습 같은 고정관념을 자연스레 학습한 셈이었다.




우리는 저마다

‘결혼 생활 교과서’를 머릿속에 품고 시작했다.


대개 부모 세대가 물려준,

혹은 드라마 속에서 본 ‘당연한 역할극’이었다.


나도 그런 그림을 그렸었다.

예쁜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이고,

식탁에 앉은 남편은 신문을 넘기며

“오늘따라 더 맛있네!”라며 미소 짓는 그림.


어딘가에서 본 듯한, 완벽해 보이는 장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참 우스운 기억이다.


왜 나는 된장찌개를 끓이고,

남편은 신문만 보고 있어야 했을까.


그저 ‘당연한 그림’이라 여겼기에

그때는 의문조차 품지 않았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당연함’ 속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을 스스로 좁혀왔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엄마와 그 위의 세대까지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에게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적,

우연히 보게 된 애니메이션 *〈핑구〉*에서

뜻밖의 장면이 내 눈길을 끌었다.


아빠 펭귄이 요리를 하고

뜨개질을 하는데,

엄마 펭귄은 느긋하게 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성 역할의 시나리오’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해 온 ‘된장찌개를 끓이는 아내’

그저 수많은 삶의 모습 중 하나일 뿐이었다.


세상이 조금씩 변하고 있음을 느끼며,

적어도 핑구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역할을 따로 구분 짓지 않았다.


둘 다 직장인이었기에,

일이 보이면 먼저 본 사람이 알아서 했다.


내가 직장을 그만둔 뒤에도

남편의 집안일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 아빠를 보고 자란 아들도

자연스레 닮아 있어서,

그 점은 늘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요즘은 남자들도 집안일과 육아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니까.



여자 할 일, 남자 할 일은 따로 없다.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것은

‘삶’이라는 하나의 숙제일 뿐이다.


집안일을 하는 손이 누구든,

신문을 읽는 사람이 누구든 상관없다


결국,

함께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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