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야만 보이는 인간의 가치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스〉(1936)는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해 버린
산업화 시대를 풍자했다.
끝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기계의 일부처럼 일하던 채플린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내면서도 묘한 슬픔을 남겼다.
그는 기계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했고,
마지막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길 위를 걸어갔다.
그 장면은 우리에게 한 가지 명확한 진실을 보여준다.
기계가 아무리 빠르게 돌아가도,
인간의 가치는 그 속도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리면 요즘의 세상과 겹쳐진다.
산업화 시대에는
인간이 기계를 조작하는 주체였지만
이제 AI 시대의 인간은 기계를 멈출 수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는 관찰자로 밀려나고 있다.
AI가 더 똑똑해질수록, 우리는 그저
결과를 지켜보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요즘은 가끔 두려운 생각이 든다.
인간이 AI를 만드는 걸까,
아니면 AI의 발전을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걸까.
이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의 의미를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저항에서 비롯된 질문이다.
그렇다면, 세상의 변화 속도에 맞춰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의 시대에
결국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무엇일까.
몇 해 전만 해도
‘워라밸’, ‘소확행’ 같은 말로
사람들은 작게라도 행복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지금은
일하고, 버티고, 하루를 넘기기도 벅차서
그 작은 행복을 찾을 여유조차 사라져 버린 듯하다.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요즘은 다들 말보다 쉼,
그리고 사람의 온기 같은 걸 원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따뜻한 눈빛 하나가
기계가 줄 수 없는 위로로 다가오는 시대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AI 시대에 우리에게 남은 숙제이자,
유일한 해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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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요즘 나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으려 애쓰는 대신
잠깐 멈춰 서서 숨을 고른다.
따뜻한 햇살, 누군가의 웃음소리 하나에
‘아, 그래. 나는 지금 이 속도로도 괜찮구나.’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본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내 속도로 숨 쉬고 있다는 걸 확신한다.
그게 어쩌면,
인간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조용한 저항이 아닐까 싶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기쁨과 슬픔,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일만큼은
오직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영역이다.
찰리 채플린이 톱니바퀴 사이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듯,
우리도 세상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한다.
결국 그 미소야말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능이자
AI 시대를 건너는 우리가 ‘인간임’을
조용히 증명하는 방식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