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내고 있다 vs 살아가고 있다

말은 비슷하지만 마음은 완전히 다르다

by 앨리스킴


‘살아가고 있어.’


이 말에는

일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조금 버거워도

매일의 리듬을 유지하며

스스로 숨 돌릴 자리를 찾아가는 상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엔

아직 작은 여유가 남아 있고,

“괜찮아질 거야”라는 믿음도 아주 작게나마 자리 잡고 있다.


힘들어도 가끔 웃음이 나오고, 주말엔

누군가를 만날까 하는 마음의 결도 남아 있다.

현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평범한 하루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반면 ‘살아내고 있어.’


이 말은 결이 전혀 다르다.

삶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간신히 견디고 있다는 고백에 가깝다.


감정의 여유가 거의 사라지고,

“해야 하니까 하는 것들”로 하루가 채워진다.

스스로도 지쳐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대놓고 말하기 어려울 때

사람은 종종 ‘살아내는 중’이라고 말한다.



밥은 먹지만 맛이 없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괜히 두렵고 피곤하다.

아무 일도 없는데 저녁이면 눈물이 맺히기도 한다.


누군가 이런 마음을 털어놓는다면

그저 잘 듣고, 잘 살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가끔 안부를 나누는 친구가 있다.

그날따라 목소리에 힘이 없어

“요즘 잘 지내?” 하고 조심스레 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돌아온 대답은,


“응… 잘 살아내고 있어.”


그 짧은 문장이 전화기 너머로 툭 떨어지는 순간,

내 가슴도 함께 내려앉았다.


‘살아내고 있다’는 건

‘잘 지낸다’는 말보다 훨씬 솔직한 고백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다.

“나 요즘 좀 힘들어.”

그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오래전, 나도 많이 지쳐 있던 때가 있었다.

마음이 고장 난 시계처럼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있고,

몸도 겨우 끌려 다니던 때였다.


눈이 억수같이 퍼붓던 겨울,

도시 전체가 하얗게 잠긴 날이었다.

그 고요함이 이상하게 마음까지 잠가버렸다.



소나무 위엔 부드러운 눈송이가 조용히 내려앉았고,

그 여린 눈은 어느 순간 젖은 솜뭉치로 변해

가지 하나를 천천히 눌러 내리고 있었다.



‘뚝, 뚝.’

작은 경고음 같은 소리가 이어지더니

끝내 ‘찌익—’ 하고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허연 속살을 드러냈다.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웠던 모양이다.

그 순간, 마치 내 마음 한쪽이 같이 부러져 내려앉는 것처럼 아팠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나는

‘살아가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살아내고’ 있었던 거였다.



‘잘 살아내고 있어.’

어쩌면 무심코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주는 무게는

듣는 사람에겐 다른 온도로 스며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잘 지내?” 대신

“요즘 너한테 작은 기쁨이 뭐야?” 하고 묻는다.


그 대답 속에서

그 사람이 지금 어느 계단에 서 있는지

어렴풋이 보일 때가 있다.


함께 그렇게 살아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살아가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날이

조용히 찾아온다는 걸, 나는 믿게 되었다.


누구나 그렇게 하루를 견디고,

또 하루를 살아내며

자신의 속도로 다시 회복할 힘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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