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두색 자전거의 행방불명
애마가 우리 집에 들어온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날, 남편은
어디선가 낡은 자전거 한 대를 들고 왔다.
연두색 프레임에 바구니까지 달린 작은 자전거.
손잡이는 군데군데 페인트가 벗겨져 있었고,
금속 부분엔 갈색 녹이 덕지덕지 올라 있었다.
“고물상에 가야 할 물건을 왜 집으로 데려왔어?”
의아해하는 내 질문에 남편은 웃으며 설명했다.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나이 지긋한 경비아저씨가
“이거 아직 쓸 만해요.
요즘은 멀쩡한 것도 다 버려요. 아까워서…” 라며
필요하면 가져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이해할 법했다.
분리수거장에는 늘 ‘버리긴 아깝고,
나누기엔 애매한’ 것들이 가득하다.
애마도 그런 경계에 선 아이였던 셈이다.
남편은 ‘쓸 수 있는 건 살려 쓰자’는 마음과
나름의 계획이 있어 자전거를 데려온 거였다.
그리고 감사 인사로
박카스 한 박스를 드리고 왔다며 뿌듯해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녹을 닦고,
페인트를 뿌리고, 기름칠까지 하며
작은 자전거 리모델링 쇼를 펼쳤다.
그러자 손길 한 번에 본모습을 찾아낸 아이처럼
한층 반듯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날로 이름도 생겼다. 애마.
이름을 붙이고 나니 더 정이 갔다.
그렇게 우리는 5년을 함께 굴러다녔다.
사실 나는 쉰 살이 넘도록 자전거를 타지 못했다.
어릴 적
오빠 뒤에 탔다가 공중제비한 기억 때문인지
두 바퀴만 보면 다리가 먼저 굳어버렸다.
그래서 보조바퀴 없이 생생 달리는 꼬마들을 보면
진짜 묘기라도 보듯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었다.
이곳으로 이사 온 뒤 남편은
동네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탐방했다.
혼자 누리기엔 아까운 곳이 많다며
내게 꼭 자전거를 가르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낡은 애마를 데려온 남편의 의도를.
다행히 애마는 크기도 작고 부담도 덜했다.
몇 번 넘어져 무릎이 까지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두 발 자전거 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신세계를 만났다.
풍경도, 바람도, 속도도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는 자유.
그 신선한 재미에 빠져
나는 거의 매일 애마와 동네를 누비고 다녔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갔다.
누가 뭐래도 내겐 첫 자전거이자 첫 경험이었으니까.
라이딩용 자전거도 있지만 특히 애마는
지하철역이나 마트 갈 때 부담 없이 데려가기 좋았다.
바구니가 있어 장 본 걸 툭 담기에도 딱이었다.
⸻
그런데 보름 전, 애마가 사라졌다.
자전거 거치대에 자물쇠까지 걸어 뒀었는데.
혹시 내가 헷갈렸나 싶어
지하철역, 마트, 골목길까지 샅샅이 찾아봤지만
결론은 하나-어디에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남편과 나는 이산가족을 찾듯
집 주변을 매일같이 뒤지고 있다.
‘이렇게 낡은 걸 누가 가져갈까’ 싶어
종종 자물쇠도 걸지 않고 아무 데나 세워놓았던
기억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라이딩용은 비싸다고 신경 쓰면서
애마는 ‘없어도 그만’처럼 대해 온 게
문득 미안해졌다.
요즘도 저녁이면 남편과 동네 한 바퀴를 돌며 애마를 찾는다.
혹시나 어느 모퉁이에 연두색 자전거가
가만히 서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러다 깨달았다.
있을 땐 몰랐던 소중함이
잃고 나서야 비로소 또렷해진다는 것을.
대충 다뤄도 괜찮을 거라 여긴 것들이
어느 순간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다는 걸.
겉이 낡았다고 하찮게 여기지 말라는,
조금 늦었지만 단단한 교훈 하나를
애마가 남기고 간 셈이다.
소중한 것일수록 있을 때 챙겨야 한다.
그건 자전거에도, 사람에도,
그리고 오래된 기억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