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며칠 나는 분명 여행자였다.
지도에 표시된 장소들을 하나씩 지워가며 움직였다.
어디를 봐야 하는지,
무엇을 놓치면 안 되는지에 마음이 바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갈 곳부터 정했다.
이 몰, 저 박물관, 저녁엔 야경.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일정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오늘 못 보면 내일 보면 되고,
내일 못 보면 모레 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 안에 머무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여행자일 때 공간은 목적지였다.
‘여기가 그 유명한 곳이야’라는 말이 먼저 나왔다.
살아보니 공간은
목적지가 아니라 동선이 되었다.
이 길이 그늘이 많은지,
이 마트가 싼 지,
이 역에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스콜이 쏟아질 때 피할 곳이 있는지,
밤에 걸어도 안전한지.
어느새 나는
장소를 기억하기보다
길을 기억하고 있었다.
여행자일 때 불편은 이야기였다.
와이파이가 안 되면 웃어넘겼고,
길을 헤매면 추억이 되었다.
살아보니 불편은 문제가 되었다.
유심이 안 돼서 남편 폰에 붙어 다녀야 했고,
연결이 끊길까 봐 괜히 더 불안했다.
여행자에게 불편은 에피소드지만,
거주자에게 불편은 안전과 연결된다.
여행자일 때 스치는 사람은 배경이 된다.
사진 속에 함께 찍히는 얼굴도 풍경의 일부로 남는다.
살아보니 풍경이던 사람은 이웃이 되었다.
늘 마주치는 경비 아저씨,
항상 웃어주던 청소하는 필리핀 아주머니,
자주 가는 카페 직원.
그들은 어느새 가까운 이웃이 되어 있었다.
여행자일 때 나는 나라를 평가했다.
“이 나라는 느긋하네.”
“친절하네.”
“조금 불편하네.”
살아보니 나는 나를 보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 빨리 판단하는지,
왜 이렇게 불편을 싫어하는지,
왜 이렇게 남의 기준으로 비교하는지.
그래서 한 달을 살며 알게 된 건,
말레이시아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였다.
그렇게 나는
이 나라를 ‘보는 사람’에서
이 나라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